Text and Context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욘 1:1-3)
       
요나서는 볼 때마다 참 이상한 성경입니다. 요나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요나의 몸으로 그리고 말로 하는 대화를 그대로 풀어쓴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박국서가 오로지 말로 하는 대화로서 예언서의 전부를 만들어내었다면 요나서는 요나와 하나님의 대화를 몸으로 그리고 말로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요나의 행동을 모두 찾아내시며 모두 확인하시고 요나를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네 그 말대로 정말로 요나를 끝까지 추적하셔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를 관철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합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너희들의 죄가 여호와 하나님께 닿았다라고 선언하라고 말입니다.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이유로 그러한 예언을 하라고 하시는지 명확하게 압니다. 그래서 도망칩니다. 애국자 아니 더 심하게 말하면 국수주의자인 요나(왕하 14:25-27)는 이스라엘의 대적 앗시리아가 그대로 멸망하기를 바라지 살아남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요나는 앗시리아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해서 하나님 앞을 떠납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 가장 밑바닥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나를 추적하셔서 요나가 타고 있는 배에 풍랑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배 안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기도 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신들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배 밑바닥에서 자고 있는 요나를 배의 선장이 찾아냅니다. 그리고 배의 선장은 요나를 다그칩니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욘 1:6)
   
이방인인 선장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보다도 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배의 주인이자 이방인이며 이교도인 선장의 입을 통해서 요나를 추적하여 다가와서 말을 거십니다. 나에게로 돌아오라고, 나에게 구하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재촉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요나는 배 밑바닥까지 쫓아오신 하나님을 보고 결단을 내립니다. 내 나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저 앗시리아가 완전히 멸망하기 위해서 죽겠다고 말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욘 1:9-12)
    
요나는 배 안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그 제비뽑기에 요나가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 요나를 추적하시고 요나에게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애국심에 철철 넘쳐 있던 요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어떻게 하면 풍랑이 멎을 수 있는가 혹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가라는 배 안의 이방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자신을 물 속에 빠뜨려라 그러면 나와 상관없는 너희들은 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지만 악인은 미워하셔서 그에게 저주를 허락하시며 죽음을 주신다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악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요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실 것이라고 자신을 죽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그럴 것이면 자신과 상관없는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하나님 앞에 저당잡힐 일이 없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뜻과 상관없이 도망친 자신은 죽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그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니느웨로 절대로 갈 일이 없는 요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 위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물 속에 빠집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에게서 놓임을 받을 것이라고 요나는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요나서 1장 17절에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고 요나서 2장 1절에 요나가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요나는 72시간을 버티고 나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스올까지 추적하심을 이제는 요나가 깨달았다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그 이후에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해드리기로 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죽으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낯을 피해서 도망가는 당신의 사람들을 찾으시고 추적하시며 그들을 자신의 뜻대로 돌리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존재입니다. 요나는 심정적으로는 앗시리아의 회복을 절대로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항복 문서를 입으로 하나님께 전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요나를 다시 뭍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은 요나서 1장 1절의 말씀처럼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니느웨로 간 요나는 원래는 하룻동안 돌아다녀야만 다 전할 수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많이 듣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달려서 반나절만에 주파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건성으로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를 하였고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니느웨에 심판을 내리기로 한 결정을 철회합니다. 그러한 철회 소식을 당연히 알고 있는 요나는 하나님에게 따집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욘 4:1-4)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애국자였던 요나는 이스라엘의 대적인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평안을 되찾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을 용서하시고 살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비난하는 요나는 자신이 죽기를 바랐습니다. 죽여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요나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설득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날이 아주 더운 날 등나무로 그림자를 만들어 요나를 시원케 하신 하나님은 그 밤에 등나무를 벌레로 모두 말라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메마른 동풍을 불게 하셔서 요나를 거의 죽어가게 만들어버립니다. 너무 덥고, 고되었던 요나는 이제는 힘들어서 죽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등나무를 아낀 것처럼 내가 십만이나 되는 니느웨 사람을 아낀 것이 옳지 않은 행사인가라고 말입니다. 요나는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질문에 침묵으로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 선지자 요나를 죽음으로 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찾았고 추적하였으며 그를 설득하였습니다. 죽기를 바라는 그를 살리셨고 그에게 계속 자신의 뜻을 따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요청을 말로만 따르고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던 요나에게 또 다가오셔서 그를 설득하십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예화를 몸으로 체험하게 하시고 그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이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시 13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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