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1)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민 15:1-5)
          
가데스바네아에서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대면을 하고 광야를 건너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군을 보내고 엄혹한 가나안 땅에 대한 보고를 받고 절망을 했으며 하나님을 반역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던 2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포가 이루어졌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최소한 1년 최대한 2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고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최소 38년, 최대 40년의 노정 기간을 민수기에서는 상당히 뜬금없는 내용으로 채워버립니다. 그 노정의 아픔, 힘듦, 고통 그리고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이와 같다라는 내용으로 민수기 15장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글로 쓰여진 작품이든 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든간에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유된 능력을 쓸 때는 상당히 극적인 표현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시간을 빨리 돌리는 방법을 쓴다든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행해질 제사법을 보여주어 독자로 하여금 가데스바네아에서 길을 돌려 광야로 가게 된 바로 그 비극이 비극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말합니다. 즉 가데스바네아 사건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절들의 내용은 오히려 비극이 아닌 희극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일어난 사건들은다시 독자를 비통에 잠기게 합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민 16:1, 2)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는 -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 아닌 - 무리들이 나와서 지도자들을 대적하는 내용으로 실질적으로 38년의 세월을 지나 첫사건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서 고라,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그들에게 부화뇌동 했던 지도자들은 지진으로 불로 멸망을 당하였고 그들을 지지하여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염병으로 일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지만 가데스바네아 이전 사건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에게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셨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를 구합니다. 과거에는 심판을 받고 나자빠져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러한 행동을 보이기보다는 일단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고 한다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방법을 구한다라는 것입니다.
    
38년간의 광야 노정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혀 쓸데 없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기 위해서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써 있었다면 그 외에 안식일을 범한 목수의 이야기를 씀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나와 고기를 먹기 위해서 다퉜던 사건,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사건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집트 회군을 외치는 무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모세와 아론 특히 모세의 무릎꿇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먼저세워지고 그 세워진 관계를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모세의 탄원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는 것으로 내용이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받고 자신들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돌리려고 하여 호르마 위로 전쟁을 하러 올라가지만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 사건과 그에 함께 지도자들을 타격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로 여호와 하나님이 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시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셨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데스바네아 이전에는 절대로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민 17:10-13)
          
단지 이스라엘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했다는 것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인정하셨다라는 것으로 이번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사건과 이스라엘의 지도자 반역사건을 마무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38년의 광야 시간 동안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멸망당한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었고 할 수 없는 것 즉 무지에 대해서 인정하고 모세와 아론에게 중보를 요청함으로서 그들이 적어도 가데스바네아 이전보다는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18장부터 19장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회복을 이야기하기 위애서 반역 사건의 빌미가 되었던 제사장 지파와 레위 지파의 알력 문제와 그들의 재산권 문제를 먼저 짚어주고 정결례의 의식을 제대로 알려주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가데스바네아와 므리바 물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서서히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민 2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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