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 17:16-21)
        
데살로니가와 베레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전하다가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쫓겨 총 450킬로미터의 거리를 도망쳐온 바울은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그곳에 우상이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회당과 장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이 다른 도시에서는 일단 회당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먼저 말씀을 전하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에게 갔던 것과는 이번 아테네에서의 그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그의 행보가 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아테네가 그리스의 주요 도시이면서 수많은 우상으로 가득찬 죄악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우상들 속에서 자신들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자신들이 얼마나 죄악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도시민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을 보면서 바울은 거룩한 분노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그는 당장에 달려가서 회당과 장터에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방인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논쟁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를 보면서 아테네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을 재미 있게 바라보았으니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은전혀 일할 필요없는 삶을 살아가는 말 그대로 재미를 위해서 유흥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있는가를 탐색하는 아테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오로지 공감과 재미만을 따지면서 방송이나 영화를 탐닉하는 지금의 세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생명의 유익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신경쓰기보다는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마저도 교회 안에 뭔가 재미 있는 일들이 있는가 혹은 자신의 욕망, 자신의 이득을 교회 안에서 찾기를 광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하는 작금의 사람들을 보면 아테네에서 오로지 재미와 유흥을 위해서 하루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전해도 소용이 없고 그냥 신경을 끄는 것이 나을 것도 같은데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 하나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2-25)
        
가진 것이 충분히 많고 이미 풍족해질대로 풍족해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우상단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제단은 고대 사람들이 신을 섬기는 방식에서 유래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만신전 즉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이스라엘과 같이 신을 섬기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할만한 신들을 만들어놓고 그들을 필요할 때마다 소환하여 섬깁니다. 비가 필요하면 비의 신을, 돈이 필요하면 돈의 신에게 제물 즉 뇌물을 드려서 자신에게 뭔가 반대급부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전염병이 생기게 되면 혹시 내가 어떤 신에게 저주를 받을만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들 중에서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도시에 닥친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에 제물을 드려서 신의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라고 고대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사람들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났던 것이 바로 요나의 외침에 회개를 한 니느웨 사람들의 금식 기도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금식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도시에 재난이 닥쳤을 때 그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요나가 전한 그 신의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무릎을 꿇고 금식 기도를 한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26-31)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상단지들 즉 신들은 다 쓸데 없다라고 선언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며 그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 신에게 제물을 드려 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 당신께서 단번에 죽으셨고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셨다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선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라는 것 그리고 그 죽으심을 박차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 그것 자체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미련한 지식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신들이 있고 그 신들 중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신을 선택하여 적절하게 제물을 받치기만 하면 삶을 잘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테네는 상업도시들 중에서도 부자 도시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그 어떤 도시보다도 더 풍족합니다.
    


새로운 신이 필요없으며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을 갈급한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재미 있는 이야기 혹은 웃긴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것이 진실이라고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내에서는 마녀사냥이 가득한데 그러한 마녀사냥의 기본적인 전제는 대중은 무조건 옳다라는 신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조건 옳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러한가에 대해서 따졌던 베뢰아 사람들처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가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 충분히 숙고해야만 하는데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다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지금도 우리 자신이 정말로 옳은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정의를 바라보고 가볍게 공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당연하게 거부하고 기독교 안에만 진리가 있다고 선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배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행 178:32-34)
      
복음은 유희의 대상이 아닙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생명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상대가 듣든 듣지 않든 무조건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말씀을 전하였지만 마음밭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바울의 입을 통해 전해진 그리스도를 그리고 복음을 거부하였고 바울은 그곳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절대로 그렇게 해서 얻은 사람들을 소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풍족해져서 그리고 관심이 없어서 지금의 많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의 설교를 통해서 제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열매 없음으로 인해서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우리의 열매 없음에 낙심하고 고민하는 것은 결국 인간인 우리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오늘도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을 따를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믿는 자들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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