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1)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민 15:1-5)
          
가데스바네아에서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대면을 하고 광야를 건너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군을 보내고 엄혹한 가나안 땅에 대한 보고를 받고 절망을 했으며 하나님을 반역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던 2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포가 이루어졌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었습니다만 그렇게 오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최소한 1년 최대한 2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고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최소 38년, 최대 40년의 노정 기간을 민수기에서는 상당히 뜬금없는 내용으로 채워버립니다. 그 노정의 아픔, 힘듦, 고통 그리고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이와 같다라는 내용으로 민수기 15장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글로 쓰여진 작품이든 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든간에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유된 능력을 쓸 때는 상당히 극적인 표현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시간을 빨리 돌리는 방법을 쓴다든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행해질 제사법을 보여주어 독자로 하여금 가데스바네아에서 길을 돌려 광야로 가게 된 바로 그 비극이 비극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말합니다. 즉 가데스바네아 사건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절들의 내용은 오히려 비극이 아닌 희극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일어난 사건들은다시 독자를 비통에 잠기게 합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민 16:1, 2)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는 -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 아닌 - 무리들이 나와서 지도자들을 대적하는 내용으로 실질적으로 38년의 세월을 지나 첫사건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서 고라,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그들에게 부화뇌동 했던 지도자들은 지진으로 불로 멸망을 당하였고 그들을 지지하여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염병으로 일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지만 가데스바네아 이전 사건들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에게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셨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를 구합니다. 과거에는 심판을 받고 나자빠져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러한 행동을 보이기보다는 일단 죄를 짓고 그에 대한 심판을 받았다고 한다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방법을 구한다라는 것입니다.
    
38년간의 광야 노정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혀 쓸데 없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15장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기 위해서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써 있었다면 그 외에 안식일을 범한 목수의 이야기를 씀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만나와 고기를 먹기 위해서 다퉜던 사건,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사건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집트 회군을 외치는 무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모세와 아론 특히 모세의 무릎꿇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먼저세워지고 그 세워진 관계를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모세의 탄원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는 것으로 내용이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받고 자신들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돌리려고 하여 호르마 위로 전쟁을 하러 올라가지만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 사건과 그에 함께 지도자들을 타격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진노로 여호와 하나님이 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시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셨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데스바네아 이전에는 절대로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민 17:10-13)
          
단지 이스라엘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했다는 것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인정하셨다라는 것으로 이번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사건과 이스라엘의 지도자 반역사건을 마무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38년의 광야 시간 동안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멸망당한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었고 할 수 없는 것 즉 무지에 대해서 인정하고 모세와 아론에게 중보를 요청함으로서 그들이 적어도 가데스바네아 이전보다는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후 18장부터 19장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회복을 이야기하기 위애서 반역 사건의 빌미가 되었던 제사장 지파와 레위 지파의 알력 문제와 그들의 재산권 문제를 먼저 짚어주고 정결례의 의식을 제대로 알려주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가데스바네아와 므리바 물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서서히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자각을 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민 2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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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삼상 10:17-19상)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모여 왕을 뽑는 제비뽑기를 시행하였고 암몬 왕 나하스를 패배시킨 뒤 뽑힌 왕 사울을 길갈에서 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암몬 왕 나하스가 있는 이유는 길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였던 때에 사무엘이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살아계신 이스라엘 왕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버리고 - 제대로 섬긴 적도 없기는 하지만 - 인간 왕이 자신들을 다스려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국가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체제가 왕정으로 정비가 된 이후에 이스라엘이 분명히 지파 체제 그리고 사사 지도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지만 훨씬 더 빨리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으며 왕의 반역, 왕의 타락이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방신들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인 타락이극심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견하셨고 사무엘 또한 어느정도 인지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사울 왕의 타락 그리고 다윗 왕의 인내, 솔로몬 왕의 타락까지 사실 다윗 왕을 제외하고 처음에는 괜찮다라고 여겨졌던 수많은 왕들의 타락은 예견되어진 상태입니다. 여호사밧 왕, 히스기야 왕, 요시야 왕을 제외하고 다윗 왕처럼 하나님을 섬겼던 왕들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왕들의 타락은 계속 이어졌고 어찌 보면 왕이라면 언젠가는 타락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울 왕을 뽑 이후 이스라엘은 극도로 종교적으로는 분명히 침체의 시기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 12:12-15)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사기 시대 이후부터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타락은 계속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왕정 시대와 사사 시대의 차이점은 사사들의 타락이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기드온과 삼손 - 빈도 수 자체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또한 사사의 타락과 상관없이 이스라엘의 타락은 왕정 시대에도 사사 시대에도 계속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왕정 시대에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였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단 하나 지도자들의 생각의 변화입니다.
    
사사 시대의 사사는 아비멜렉을 제외하고는 - 그는 사사로 불리지도 않았지만 - 자신들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사이기는 했지만 왕정으로 바로 넘어갔기에 - 적어도 사사들은 자신들이 왕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왕이신 하나님 아래에서 재판하는 사람 혹은 전쟁을 치르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겼습니다. 물론 입다와 같이 왕으로서 보이는 조짐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언제든지 내침을 당할 수 있는 사사, 언제든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내보냄을 당할 수 있는 사사들과 다르게 왕들은 자신들이 왕이기에 자신들 맘대로 이스라엘을 재단하려고 했고 종교 행사도 맘대로 치르려고 했으며 이방 신들을 들여오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사유화, 외교로 인한 국가의 안정, 백성의 마음 다스리기 정도입니다. 이에 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방신들이 국가를 장악한 이후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는 나라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말합니다. 그들이 왕을 구하는 것은 친히 왕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전쟁의 지도자로서 왕을 구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구분시키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정치 권력에 순응하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버려버릴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 1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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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민 18:21-24)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몫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도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민수기 시대 그러니까 광야 노정의 시대와 그 이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성전에서 수고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셨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셨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하늘에서 양식이 떨어져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를 통해서 양식을 주신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립되었고 가데스바네아 사건 이후로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 사건에 이르기까지 광야 노정의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 내에 있는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분배받지 못하는 레위인들에게 당신이 기업이 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하나님이 기업이 되신다고 하신 것은 단순히 빈말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십일조를 받치는 그 재물을 레위인이 사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인들은 그들이 쓰고 풍족할 정도로 많은 것을 누렸으며 그 안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느헤미야 시대 때에 레위인이 자신들의 양식을 얻지 못하자 자신들의 땅으로 도망간 것에 대해서 느헤미야가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양식을 주지 않은 지도자들을 책망한 이유는 사람이 먹을 것이 없이 즉 재물이 없이 단순히 열심만으로 열정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을 느헤미는 알고 있었으며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느 13:10-13)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교회에서 담임 목회자를 제외하고 교회에서 사역하는 부교역자부터 시작하여 간사들 그리고 직임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까지도 제대로 된 봉급을 책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바라봅니다. 4대보험부터 시작하여 혜택을 교회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준하여 주어야만 합니다. 열정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저 구약 시대에서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빈말로 당신이 레위인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그들이 살 것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담임목회자 혹은 당회장으로서 사역하는 목회자가 아닌 부교역자로 그리고 직원으로 사역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그들의 십일조를 교회에 받쳐야만 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교회에서 사역하는 모든 사람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충분히 그들이 생활할 정도의 돈을 받아야 하며 그들이 그러한 재물을 받는 것은 재물의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 재물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라고 빈말로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교회에서 실질적으로 재물을 줘야 한다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성도를 위해서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그들이 자신의 사역을 포기하지 않도록 최저 임금 이상의 재물을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손이 낙심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교회는 그들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돈을 말하는 사역자들은 돈의 노예가 아니냐라고 말하는 성도들이 없지 않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도들조차도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봉급이 책정이 되면 더 좋은 봉급을 받기 위해서 직장을 옮기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레위인들이 성막을 그리고 성전을 떠나지 않도록 그들이 받아야 할 재물을 그들에게 주도록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셨으며 또한 당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지도자가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경우에는 그 지도자가 그 부분을 책임졌습니다. 지금 교회에 있는 직원들 그리고 부교역자들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비를 받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지키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사레비 체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민 18: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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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한 모든 헌물을 네가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노라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아니한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헌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먹으라 이는 네게 성물인즉 남자들이 다 먹을지니라 네게 돌릴 것은 이것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이라 내가 그것을 너와 네 자녀에게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주었은즉 네 집의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니라(민 18:8-11)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제사장들이 득세를 하는 경우는 사실 상당히 드물었습니다. 물론 엘리 제사장처럼 제사장이 사사의 권위를 같이 하는 경우나 사무엘, 다윗 그리고 모세의 경우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스라엘의 최고의 자리에 서 있을 때는 제사장의 직무도 원할하게 운용이 되었으며 제사장의 권위 또한 충분히 높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왕이 원하는대로, 권력자가 원하는대로백성이 원하는대로 각자 소견에 옳은대로 삶을 살았기에 제사장들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사장의 기업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설정한 것은 단순히 수사적 어법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각 지파들은 자신들의 기업을 땅으로얻어내었고 그 땅에서 난 산물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들의 땅을 가나안 땅에서 얻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의 땅 나누기에서 그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요단강 이편의 세 곳, 저편의 세 곳, 도피성만을 얻어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을 영위할 수 있는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성막을 보살피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으며 그 일들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하는데 그 공급받는 근거가 제사를 통해서 얻게 되는 헌물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부터 시작하여 제단에 올려진 많은 제물 중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그들의 대가로 취할 수 있었다라는 것은 그들이 그것 외에는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왕들이 세워진 이후에 성막과 성전은 왕들의 성향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보호를 받기도 하고 그 안의 제사장들 또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왕들이 하나님보다는 이방 세력들을, 그리고 이방 종교들을 더 따랐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의식주를 위해서 생업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결국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업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먹여야만 하며 그들이 안정되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만 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의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서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네 것이 되리라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처음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처음 태어난 부정한 짐승도 대속할 것이며 그 사람을 대속할 때에는 난 지 한 달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대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니라 오직 처음 태어난 소나 처음 태어난 양이나 처음 태어난 염소는 대속하지 말지니 그것들은 거룩한즉 그 피는 제단에 뿌리고 그 기름은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릴 것이며 그 고기는 네게 돌릴지니 흔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같이 네게 돌릴 것이니라(민 18:12-18)
        
처음 난 사람이나 동물부터 십일조까지 그리고 수없이 많이 드리는 이스라엘의 제물들 중 상당 부분을 제사장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항목을 상당히 세세하게 적었는데 그것은 그만큼 제사장들의 몫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속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원하는만큼만 제사장들에게 돌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고 - 엘리 때처럼 제사장의 권력이 강했던 때가 별로 없었기에 -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제사장은 자기 밥 먹기도 힘들 수 있다라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물론 지금의 시대는 일정 수 이상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 같은 경우 목회자의 사례비가 꽤 높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일정 수 이하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는 교회 같은 경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공급하시는 제사장의 음식에 비해서 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들은 단순히 열정만으로 그 일들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을 바라고 그 공급을 얻어내기 위해서도 노력을 충분히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기 열정만을 소비하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리는 그 것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 또한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정결할 수 있도록 매번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제사장들이 자신의 욕심에 따라서 먹을 것을 취하게 되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고라 자손은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 대해서 그리고 아론의 자손들 즉 제사장들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지만 제사장 지파는 하나님의 소금 언약 즉 여호와 하나님과, 제사장 지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그 언약 하나만을 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소금 언약을 파기해버리면 제사장들은 제사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업을 찾아야 하며 제사장들이 정결하지 못하면제사장으로서 자격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소금 언약을 통해서 제사장 지파의 생존을 약속하셨으며 제사장 지파의 정결함 또한 요구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1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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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들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모세가 곧 그 같이 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민 17:8-13)
          
민수기 18장과 19장 그러니까 제사장 지파의 직무와 레위 지파의 직무, 그리고 정결례와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은 민수기 17장 마지막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침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의 백성이니 자신들에게도 종교의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치 권력 또한 분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지지를 받은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만 자신들의믿음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교란한 모세와 아론의 잘못이라고 여겼고 모세와 아론에 대적하다가 염병이 퍼져 일만 명 이상이나 되는 이스라엘 자손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확하게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그 지팡이에 달린 살구열매를 통해서 엄정하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와 아론은 당신이 세우셨으니 그 권위에 대해서 토달지 말라고 말입니다. 38년만에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닉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지난 40여 년 동안 광야 노정 가운데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염병을 보내셨습니다.
          
염병을 보내셨다라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다라는 것을 의미했고 이스라엘이 잘못하면 그들 전체를 몰살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낳았습니다.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 앞에 그들이 나설 수가 없게 되었으며 그들 자신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일컬을 수 없다라고 느꼈으며 이것은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자신들도 자신들의 부모 세대와 마찬가지로 들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의중을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과거에 그들에게 모세를 통해서 일러주었던 레위 지파 그리고 제사장 지파의 직무에 대해서 뜬금없이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자신들에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그의 말을 대언하는 모세는 제사장의 직무, 레위 지파의 직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삼하 6:5-8)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왕이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자신의 거처에 옮기기 위해서 행사를 엽니다. 전 이스라엘에게 알려진 이 행사에서 수레로 하나님의 궤를 끌고가던 아효와 웃사 중에서 웃사가 소들이 뜀으로 인해서 엎어지려고 하는 하나님의 궤를 잡으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치심을 입고 죽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다윗은 두려워 하여 자신의 거처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는 것을 포기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기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신 것이 아닌가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벧에돔의 집에 옮겨진 여호와의 궤로 인해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이 임함을 보고 다윗은 생각을 달리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혹여나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웃사를 치심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알려준 그 법도대로 하나님의 궤를 옮기지 않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다윗은 다시금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모으고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궤를 어깨에 메게 하고 그 앞에서 다시 성대한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안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거처에 옮기는 것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 하나님이 버렸기 때문에 염병을 일으키거나, 땅이 갈라져 사람을 삼키는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그들이 거스르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여호와 하나님에게 대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대로 자신을 섬기기를 요구하셨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들이 자신을 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사장 지파는 제사장 지파의 직무를, 레위 지파는 레위 지파의 직무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막 근처로 와서 하나님의 진노를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심플합니다. 내가 말한대로, 내가 명령한대로 너희가 행하면 평안이 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광야 노정 마지막 때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40년의 시기가 끝나감을 보고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계략 이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성물, 성막, 성궤에 대해서 다시금 이야기할 수 있게 하여 오직 여호와의 힘으로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다시 회복하게 하고, 그들이 해야할, 그들이 지켜야할 직무와 행동 요령에 대해서 말씀하실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후, 여호와의 역사가 극명하게 드러난 바로 그 이벤트 이후로 나오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 레위인은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를 지키려니와 성소의 기구와 제단에는 가까이 하지 못하리니 두렵건대 그들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과 회막의 직무를 다할 것이요 다른 사람은 너희에게 가까이 하지 못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제단의 직무를 다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너희의 형제 레위인을 택하여 내게 돌리고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회막의 일을 하게 하였나니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민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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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민 17:1-5)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의 반역이 있기 전 그러니까 사십 년의 광야 노정이 없던 바로 그 때,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반역하던 바로 그 때까지 이스라엘과 모세의 갈등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와 하나님의 갈등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시냐라는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노예로서 죽어가던 이집트 땅에서 벗어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조금은 짦은 여정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즉 홍해를 거쳐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국가와 국가종교를 선물로 받고 조금은 이른 시간에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홍해를 거칠 때에도 시내산에 도착할 때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번 하나님을 반역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각도 없었고 언제든지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물론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필요해서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원망하기는 했지만 굵직한 사건들, 즉 시내산의 금송아지 사건이나 가데스바네아의 반역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 안에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은 실제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로 40년의 세월 동안 가데스바네아 당시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은 - 이들이 최소한입니다 - 대부분 죽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임새에 고라와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반역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역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고 있던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반역을 주도했던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의 백성이라 언급하였고 그들의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언급을 합니다.
      
흔히 홍해와 요단강을 구분선으로 짓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이 자각하는 때는 바로 가데스바네아 사건 이후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의 사건 이전 그 40여 년의 노정 기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그들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였기에 - 죽을까봐 -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인 모세와 아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어떠한 자리에 있는지에 대한 것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자신들이 왜 광야에서 이렇게 뼈빠지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가슴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었기에 희생양이 필요했고 그 희생양으로 자신들을 치리하던 모세와 아론을 선택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 권력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딜을 해서라도 이 광야 생활을 청산해주기를 바랐지만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만 죽고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을만한 사람들 즉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에게 권력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작 그들이 죽어버리자 그들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말을 함으로서 -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 그들을 죽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들을 광야에서 늙어 죽게 만들려고 하는 모세와 아론이라고 한계를 긋고 그들을 돌로 쳐버리려고 합니다. 그만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고 모세와 아론을 몰랐으며 그들 스스로도 몰랐습니다.
          
염병으로 일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 아론의 관계를 먼저 알려주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나머지 지파의 족장들에게 지팡이 하나씩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열두 개의 지팡이를 여호와의 궤 아래 두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명하신 이유는 오늘의 말씀 5절에 나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에게 하는 원망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들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민 17:7-10)
            
즉 아론의 싹난 지팡이에 살구꽃을 그리고 살구 열매를 맺게 한 기적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권위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며 또 하나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간이 그 권위가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론과 모세가 잘못을 했을 때에도 무조건 덮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민수기 20장에서 모세와 아론이 혈기를 부려 하나님의 권위를 침탈했을 때 - 이 말씀이 나올 때 다시 말하겠지만 -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고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를 하셨던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자신들 멋대로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아론의 자팡이에서 난 살구열매를 통해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를 대적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염병으로 일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고 그 이전에 이백오십 명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죽었던 이유를 그 때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에 비로서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들의 절망적인 사항들을 이야기하고 해결해달라고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성막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한다면 나아갈 수 있었지만 - 고라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곤 하였습니다. - 그러나 심판의 능력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신들은 그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라고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은 스스로를 억눌러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18장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을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너는 네 형제 레위 지파 곧 네 조상의 지파를 데려다가 너와 함께 있게 하여 너와 네 아들들이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때 그들이 너를 돕게 하라(민 17:1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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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민 16:41-45)
          
40여 년의 광야 노정이 끝나갈 즈음에 고라는 종교 권력을 취하기 위해서,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온은 정치 권력을 취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나름대로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40년 전에 이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당시 그리고 지금의 최고 권력자인 모세와 아론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좌절이 된 이후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아다녔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그들만의 착각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불순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시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을 막아섰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경각이 달려 있었다는 그 사실이 그들의 머리 속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기억하지 못하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잘못,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에게 떠넘기는 것이 일상이 된 존재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처럼 말입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등에 업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려고 했다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난 그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빌미는 여호와의 백성을 모세와 아론이 죽였다는 죄목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제 일마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이스라엘의 250 지도자들을 죽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엄혹히 말한다면 고라,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이스라엘의 250 지도자들의 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절멸시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40년 동안 있어왔던 광야에서 떠도는 생활 그 자체를 소멸시키고 싶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만 없어진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든 아니면 다른 땅이든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빽빽한 구름 사이에서 그들과 만나셨던 여호와 하나님과 그들은 언약을 맺었지만 인간은 이미 잊어버렸습니다. 바로 그 전날 고라와 다단, 아비람, 온 그리고 250 지도자들이 죽어나갔던 바로 그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지만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불리한 것은 언제나처럼 그들은 잊어버리고 맙니다.
        
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숙해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모든 죄악, 그 모든 처벌을 모세와 아론에게 떠넘기려고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불을 향로에 담아 향을 피우고 현재 자신들의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을 방금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몸으로 막아서기 위해서 모세와 아론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 하나님을 전하는 사역자들은 수없이 많은 압박들을 받고 있으며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을 위하지 않고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다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을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비난을 받고 비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신을 핍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위험에 뛰어들어서 그 사람을 구해야만 합니다.
          
아론이 모세의 명령을 따라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 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민 16:47-50)
    
모세와 아론은 사역자이며, 지도자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위해서 하나님께 신원하였으며 방법을 찾아서 염병이 퍼져 죽어가는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서서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처럼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 욕구를 성취하려고 하는 지도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자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죽어줄 수 있는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막아섰던 것처럼, 모세와 아론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킨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셨을 때 엎드렸던 것처럼 무너진 성벽 앞을 막아서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그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말하는 그러한 지도자를 여호와 하나님은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지도자를 찾고 계시지만 많은 주님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의 안위가 더욱 걱정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겔 때에 그러한 지도자를 찾지 못하셨던 고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멸망을 받게 되었으며 아브라함도 결국 하나님과 10명의 의인을 찾겠다고 하였다가 절망을 하였지만 모세와 아론은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버린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십자가 위에서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독교를 미워하는 사람들, 비판하는 사람들을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서 있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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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삼상 10:1, 7)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예언받은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무엘이 예언했던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나귀를 이미 찾았다는 전령을 받은 것이나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예물을 받은 것이나 선지자들 틈에 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아 예언을 할 것이라는 그 스스로에게는 첫 번째 것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그에게 일어난 것이고 그로 인해서 사울은 사무엘의 가장 큰 예언일 수 있는 사울 그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에 심증을 굳힐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예언을 믿지 못했다면 미스바에서 모이는 이스라엘 왕을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바로 그 때에 사울이 참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용기는 좀 부족해서 숨어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어찌 되었든간에 사울은 여호와의 영을 크게 받아 예언을 한 이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숙부 넬을 만나게 됩니다. 어차피 자신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같이 갔던 사환이 그에[게 다 알릴 것이므로 나귀들을 찾기 위해서 사무엘을 찾아갔다라고 실토를 하게 되었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묻는 넬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사무엘의 예언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게 됩니다.
      
소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신중하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시대 초기 때에 이스라엘에게 거의 전멸할 뻔하였기에 인구 수 자체가 적었고 사울 그 자신도 말했지만 기스와 넬이 있는 그 집안은 그리 큰 집안이 아니었기에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면 자칫 엄청난 전화가 그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울은 숙부라 하더라도 넬에게 알릴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왕을 구할 것이라는 소문이 꽤 오랫동안 퍼져 있었을 것이기에 사무엘을 만났다는 사울에게 일말의 기대를 넬이 안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의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반드시 살아나시리이다 하더이다 하더라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하 8:10-15)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엘리야에게 세 명의 인물을 추천합니다. 새로운 선지자 엘리사, 새로운 이스라엘 왕 예후, 새로운 아람 왕 하사엘입니다. 여기서 하사엘은 엘리사가 직접 그에게 왕이 될 것을 예언을 하게 되는데 그 예언을 하기 이전에 당시 왕이었던 아람 왕 벤하닷의 병의 치유 유무를 하사엘은 물어보았고 엘리사는 그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하사엘이 순리대로 왕이 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함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사엘은 엘리사를 통해서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받았기에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벤하닷 왕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왕이 된 것입니다. 그에 반해서 사울은 스스로의 힘으로 왕이 되기를 노력했던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때를 기다리라고 말한 것처럼 왕이 자신에게 주어질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환도 모르고 숙부 넬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간직한 이후에 때가 되었고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이라고 통지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세우기 위해서 그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삼상 10: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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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민 16:12-14)
       
사람들의 세력을 모으는 것은 사실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유시민이 대선 토론에서 대선 후보가 가져야 할 양식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유시민 후보는 대선 후보는 논리적으로 검증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즉 표가 떨어지는 이야기를 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외부에서 볼 때에는 논리적인 것이 승리를 거두고, 합리적인  이성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국민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통령을 원하며 국민은 자신의 감정을 시원하게 해주는 후보를 지지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일견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것이 사실이며 자기의 감정을 해소해주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조금은 불합리한 면을 가진 존재라고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에 드는 정치를 하기는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국정을 펼쳐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국민의 마음에 드는 정치가 무조건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되었을 때 국민이 그를 뽑아준 것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달라고 한 것이었으나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국민이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과물이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으로 그리고 그 스스로가 가진 매력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러나 국민과 소통을 하지 못하였고 일부 사람들에게 이로운 정치만을 하다가 결국 탄핵되고야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뽑아놓은 국민은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이 국민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국민은 지난 해에 촛불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원 전 천 년 전에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경주하였으나 그러나 그들 스스로의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언하셨고 40년 간의 광야 노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삶 자체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불만은 결국 고라,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심판을 명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할 수는 없었으니 결국 그들은 지도자라도 갈아서 자신들의 울분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라는 종교 권력, 다단, 아비람, 온은 정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울분을 그대로 딛고 일어섰으나 그들이 착각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권력을 얻으려고 했다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지를 받는 것 이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지지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에 눈이 멀었고 욕심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반역을 결행하였고 결국 모세와 아론에 의해서 진압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진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모세가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너희는 제각기 향로를 들고 그 위에 향을 얹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개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그들이 제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얹고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회막 문에 서니라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민 1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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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민 16:12-14)
      
이스라엘의 후손들, 모세가 이끄는 백성들이 이집트를 출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걸렸던 시간은 40여 년입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성경에서 말한대로 군대를 이루는 60만 명 이상의 되는 사람들이 죽게 되었고 자기 죄로 인해서 죽게 된 그들 이후로 있었던 사람들마저도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게 되었다라는 그 사실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그들의 광야 노정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 그렇지만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들으며 믿고 싶은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을 진실로 스스로 확신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왜곡된 진실을 강요하게 됩니다. 특히 레위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온은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광야 노정의 이유는 바로 모세와 아론의 잘못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집트와 접점이 혹시나 있을 히브리 노예 출신들은 대부분 죽어나갔기 때문입니다. 고라와 다단, 아비람 그리고 온이 원한 것은 권력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사십여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했듯이 자신들이 치리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비람과 다단 그리고 온이 정치적인 권력 즉 모세의 권력을 탐했다면 고라는 종교적인 권력 즉 아론의 권력을 탐했습니다.
    
고라와, 아비람, 다단과 온 모두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에게 250 지휘관들이 함께 했고 나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그들의 반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던 모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아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모세와 아론 모두를 버려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반란자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지했을까요?
     
사십여 년의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했습니다. 자신들의 힘든 이 상황의 이유를 여호와 하나님께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죽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광야 노정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이미 죽은 열 명의 정탐군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낸 모세와 아론의 잘못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스라엘 백성들 머리에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들이 당을 짓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다라는 그 사실은 그들의 머리 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든 고난의 행보, 광야의 노정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들의 잘못은 당연히 머리 속에서 사라지고 없고 말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왜곡된 생각은 결국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였다라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선택은 이후 불뱀의 고통을 받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수없이 많은 인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잘못을 직면해야 할 때 직면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버리면 그 당시에는 편합니다. 자기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할 수 있으며 자기가 지금 혹시 힘들어 한다면 그 힘든 이유를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밀어버려 스스로는 평안함을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 있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잘못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감언이설로 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그 속임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마저 그들은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에 뿌려진 씨앗을 새가 먹어버리듯이 회개할 기회도, 하나님께 나아갈 기회도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하며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죄를 숨기기 위해서 죄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말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마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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