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1, 2)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그러나 그 안에서 고난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며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구원의 손길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고난 당하고 고초를 당한 사람들이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죄를 지었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었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가 버린 것입니다.
      
남유다의 북쪽 갈릴리 땅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북이스라엘의 영토였으나 앗시리아 제국이 와서 그곳을 모두 훼파하였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들은 사마리아 이상으로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땅과 다르게 그곳은 황폐하게 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미래에 오실 메시아를 선포하셨습니다. 바로 그곳,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갈릴리 땅에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당신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모든 악한 마귀 사탄은 물러가고 세상의 권세들 또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성자 하나님이시자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황폐해진 땅, 가장 무너진 땅 바로 그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 7)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대체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땅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백성 또한 하나님을 버리는 데 또 한 번 일조합니다.
    
앗시리아 제국에 정복을 당할 때도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이 아닌 가치 없는 것을 더 섬기려고 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땅이나 갈릴리 땅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3, 4)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오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약속해주시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친히 내보이십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마치 여호와와 아세라 상을 부부의 연으로 맺어놓아우상을 새롭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돈을 같이 섬기거나 하나님과 사탄을 같이 섬기는 패악한 짓을 벌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문제이고 우리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갈릴리 땅에 회복이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땅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만큼 깨끗한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구원 받을만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명확히 알고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하지 말고 오히려 에스라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려놓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중 세리의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스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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