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5-8)
        
지난 1년은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뜻깊은 한 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몇 년 동안 흔히 503이라고 불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횡 그리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가 깊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 아닌 한 개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그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 그들은 의지를 불태웠고 서로 힘을 모았습니다. 정의는 침묵하지 않는 개인들의 모임으로 인해 다시금 불타오를 수 있다라는 사실을, 세워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난 1년 동안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장르 즉 애니메이션이나 슈퍼 히어로 영화 같은 경우는 보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영화관에서보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보는 경우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저는 영화 비평을 하는 영상을 즐겨보고는 합니다. 특히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을 잘 보는 편인데 어제 이 영화당을 보면서 인상 깊은 말들이 나와서 페이스북에 사진만 올렸습니다. 어제 내용은 혹성탈출 시리즈 리부트 1편 2편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그 영화평을 하는 중에 이동진 평론가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게 되는데 유인원에 속한 존재들 속에서도 평화를 원하는 진영, 전쟁을 원하는 진영이 있고 인간에 속한 존재들 속에서도 평화를 원하는 진영, 전쟁을 원하는 진영이 있다. 유인원에 속했는가 인간 속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즉 "어떤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나의 정당성이 그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그 집단에서 어떤 이야기,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정당서을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의 말에는 수긍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고민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은 다양한 장르의 컨텐츠를 통해서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도전되는 말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즉 우리가 하는 일, 하는 행동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먼저 우리가 치열하게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오히려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 비유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는 명제입니다. 그리고 그 명제 속에서 우리가 유독 고민을 많이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부분은 열매라는 것인데 그 열매가 사랑인가 전도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다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양분을 요구합니다. 축복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은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는가, 나는 그리스도와 붙어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이 확실한가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서는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세상에서 끼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0-34)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 속에서 마찬가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의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은 따로 있다라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 위에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순서를 보면 그의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먼저 우리는 하나님 나라 자체를 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나라의 복,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을 넘어섭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 나라로 번역된 저 말은 하나님 나라라고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영향력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존재들인가,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가, 우리는 변화되어 있는 사람인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물어보신 것입니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영향력 혹은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존재가 당연히 될 것입니다.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누군가의 자녀가 되는 것, 어떤 단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더욱 중요시 여겨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행동으로 자연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우리에게 한계가 명확하게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4-20)
    
마틴 루터가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말하는 야고보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오히려 우리는 믿음의 위대함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재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명확하게 그리고 여실히 보여줍니다. 단순히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그들의 열매로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싹을 틔우면 당연히 자라나게 되고 충분히 양분이 공급되면 가지는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열매를 맺고 있다면 우리의 의지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문제일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하나님께로 매일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남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성령이 없고 우리 안에 단순히 세상의 노력, 의지만 있다면 세상 속에서 의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으며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우리는 더욱 성령을 사모해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해야만 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나라로 가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을 얻었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시고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싹을 틔웠다라는 것 즉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생명의 유무를 확인하지 않고 부지런히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생명이 없는 종이인형을 억지로 움직이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있는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맛보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4-2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 다르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예수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한 사람으로서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악한 일을 행한 사람으로서 심판의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는 인간의 노력, 인간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내주하셔야 하며 믿는 모든 사람에게 허락한 생명이 그 인간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가지가 나무에 연결되어 열매를 맺듯, 싹이 틔워서 식물이 되듯 우리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선함을,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유지하고 선언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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