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행 26:1-3)
        
유대교의 철저한 신봉자로서 사울은 예루살렘의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그리스도인 스데반의 죽음에 일조를 하였고 그 이후 예루살렘의 거대한 그리스도인 탄압의 기간 때에 가장 선봉에 나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사람들을 잔멸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시리아 땅 다마스커스 즉 다메섹으로 가서 그곳의 유대인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그들도 똑같이 징계하기 위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 도중에 즉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인격적으로 강렬하게 사울의 길을 막으셨고 압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광휘에 눈이 멀고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야의 기도에 따라서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사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다메섹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하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이 그를 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로 보내었고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이후에 그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명을 위해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전에도 한 번 언급한 것처럼 사울 즉 사도 바울은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 그 도시의 회당에 먼저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것을 버리면 이후 이방인에게 갑니다. 꾸준히 말은 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버리면 그들에게 다시는 가지 않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다음 도시 즉 다른 도시로 가게 되면 그곳의 회당을 먼저 찾게 되고 그곳에서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처럼 자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잔멸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옥에 가두고 사형에 처하게 하려고 열심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착각하였고 그로 인해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인 중의 괴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6-18)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에서 기도하는 중에 그에게 이방인들에게만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며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바로 그 유대인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죽였던 바로 그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자신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모으셨던 것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저주하던 베드로를 다시 세우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이스라엘에게도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들에서 지속적으로 게바는 유대인의 사도요 자신은 이방인의 사도라고 자신의 직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으니 나도 사랑한다라는 마음으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자신을 핍박하는 그들에게 팔이 꺾일지언정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손을 내밀고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은을 통해서 그리고 수없이 많은 말씀을 통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 안아주지 않으면서 다른 그 누군가에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행 28:16-20)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에 죽을 뻔하고 가이사랴에서 자신을 말도 되지 않은 언변으로 감옥에 갇히게 하려고 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결국 로마에 있는 황제에게 항소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배를 타고 가다가 죽을 고비를 겪고 로마에 입성하게 된 바울은 다시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을 청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도 바울의 말을 거부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바울은 또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오면 그들에게 다시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도시를 건너 다니면서 전도 여행을 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을 유대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