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이르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왕상 20:13, 14)
      
지금의 시리아라 할 수 있는 다메섹은 앗시리아에는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지만 한 지역의 맹주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왕권과 군세를 가지고 있는 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다메섹의 왕 벤하닷이 바로 아합 왕 때부터 북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메섹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했던 때는 바아사 왕 때 남유다의 아사 왕의 뇌물을 받고 침공했던 것이 전부였을 뿐인데 아합 왕 때부터는 직접적으로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갈라먹기를 시도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메섹 왕 벤하닷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앗시리아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시리아나 북이스라엘까지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오므리 왕 때 앗시리아에 오므리 왕이 가서 주종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았을 때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앗시리아의 편에 들어서 자신의 영토와 국가를 온전하게 하려고 했지만 앗시리아의 국력이 좋지 못한 때에 시리아는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 북이스라엘을 쳐들어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역의 맹주로서 다메섹 왕의 목적은 단순히 북이스라엘을 자신의 휘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영토를 최대한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메섹 왕 벤하닷의 행보가 상당히 거침이 없습니다. 일단 고개 숙이고 앗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는 아합 왕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합 왕이 결사 항전은 어찌 보면 그것 외에는 할 것이 없어서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한 아합 왕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무명의 선지자가 다가갑니다. 사실 이 때 아합 왕 입장에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때이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표적을 보았기에 - 여호와의 가뭄, 여호와의 불, 여호와의 비 - 그 하나님의 힘을 얻는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며 가능하면 모든 가능성을 얻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힌 아합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다가온 여호와의 선지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국력이 충분히 강하고 아합 왕이 수세가 아닌 공세였다면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두 번째 이유는 신하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할 수 있는 상황을 조정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최근 있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표적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대언자였던 엘리야를 내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이세벨의 정책 그리고 뒤이어 나온 다메섹의 북이스라엘의 침입을 연결시키지 않을 신하들과 백성들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셨던 것은 당연히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합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호와의 가뭄, 여호와의 불, 여호와의 비 그리고 여호와의 승리를 아합에게 주어서 아합이 그리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셨을 것입니다. 아합은 열매만 따먹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의도 자체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에게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나님을 따르라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경영하라고, 지금 당장의 위험은 지금 당장의 외침은 막아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합은 자신이 위험에 빠질 때에만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게된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을 배반하게 됩니다. 결국 그의 길과 하나님의 길은 달랐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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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왕상 18:21-24)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신이 있고 자신들만의 미래가 잇으며 자신들만의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러한 그들만의 것들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의 문제 모두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때 그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절망감은 스스로를 절멸에 이르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오늘을 잡아라,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인 카르페디엠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와 같은 격언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즐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 없습니다. 단순히 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삶의 황폐하며 생활이 메마릅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자극적인 것을 얻으려 하며 쾌락을 더 선호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만 가다가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갈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 앞에 서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믿고 따랐던 풍요의 신 바알이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데 그 가뭄을 해갈시켜주는 신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비였고, 오로지 풍요였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해온 풍요의 신 바알은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려고 꼭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가 누구 편에 설 지 선택하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머뭇거렸던 이유는 그래도 풍요의 신 바알을 미워해도 다시 한 번이라고 그가 비를 내리기만 한다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알이 이긴다면 그리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명기의 복들, 즉 과거 모세가 말했던 풍요의 복들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략 육십 년의 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뭔가를 주지를 않았는데 갑자기 가뭄을 일으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았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알에게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왕의 공포 정치로 인해서 삶이 무너져내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신 바알을 따르려고 하는 그 북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으로 그들에게 비를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자신의 길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때에 엘리야는 자신에게 호응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얼마나 바알이 풍요의 신이 헛된 신인지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사역자는 하나님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정말 각자가 뜻하는대로 가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뿌려야 하며 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해야만 합니다. 선량하지만 가난하고, 겸손하지만 유약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자기들의 이익 때문이었지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즉 왕의 권력과 백성들의 이익이 맞닿아져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은 버리고 풍요의 신 바알을 따랐던 것이며 우리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주님의 교회를 신경쓰지 않거나 이용하거나 버릴려고 하는 단점 투성이의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자는 사역해야 하며 기도해야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의 부족함이 있기에 사역자도 화를 내고 분노를 흘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족한 사역자를 통해서 영악한 사람들을 끌어모으십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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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솔로몬의 학정 그리고 그에 이은 르호보암의 학정에 못이겨서 다윗 왕가와 이별하게 된 북이스라엘은 그 이후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로 인해서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 그들 스스로가 원한 것은 아닐지라도 - 여호와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 족장 시대, 즉 지파들의 연합으로 이뤄졌던 사사 시대 때에는 이런 식으로 나라가 갈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겠지만 이미 남유다는 남유다대로 북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대로 각자의 행보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시대를 폭주 기관차처럼 북이스라엘은 지나가게 됩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지 한계 끝까지 보여주고 싶다는 듯이 북이스라엘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금송아지를 넘어서서 이방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가 이스라엘의 전역에 퍼지게 되었고 오므리는 아들인 아합의 아내로 두로왕 시돈의 딸인 이세벨을 선택함으로서 종교 타락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29-33)
    
국가 종교의 지배를 받았던 다윗-솔로몬 왕가의 전통은 남유다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스라엘 북방,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자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빠르게 버리고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가버렸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왕위 쟁탈전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할대로 피폐해졌기에 그들은 어떤 종교를 믿든간에 나라가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그들 입장에서는 두로라는 상인들의 나라의 공주가 왕비로 들어온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만 들어온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단지 자본만 유입이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두로를 통해서 들어온 바알 종교는 바알과 아세라는 이스라엘을 빠르게 잠식해들어갔습니다. 풍요의 신인 바알을 믿기만 한다면 한 해 농사는 잘 질 수 있다라는 지극히 물질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바알이든 여호와 하나님이든 비만 제대로 오게 하고 농사만 잘 짓게 해준다면 상관이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불안한 북이스라엘의 국가 정세를 지나는동안 선과 정의보다는 이득이 되는 것에 더 마음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가 비를 멈추게 한 이유, 가뭄을 지속하게 한 이유는 아합과 이세벨 즉 오므리 왕가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풍요의 신을 섬기고 있던 북이스라엘의 백성들 아니 바알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즉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과 손실이 되는 것 사이에 이득이 되는 것을 따지지 말라고 바알은 그들에게 이득이 될 수도 없으며 이득이 되어도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의지였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더 이상 믿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국가 시책으로서 바알을 믿게 한 것으로 하나님을 떠난게 하니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이득이 되기에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는 것이 이득이 되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버린 백성들 사이에 서서 풍요의 신 바알 그러나 거짓신에 불과한 바알이 비를 내려줄 수 없다고 바알은 헛된 신이라고 외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채찍질하시며 그들에게 돌이키라고 요구하십니다. 가뭄이 수 년 동안 계속되는 것은 그들에게 또다른 재앙인데 그 재앙을 일으킨 신인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단지 성분이 물인 비를 내리시는 것 이상으로 은혜의 비를 내리시기를 원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개를 돌리게 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가뭄을 일으키시고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이킬 때까지 돌이킬 마음이 생길 때까지 아둔하게 거짓신인 바알만 쳐다보는 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엘리야에게 선포하게 하나님은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있을 것이다 말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뭄이 시작되었습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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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왕상 16:15-17)
      
가나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북이스라엘은 그 많은 영토에도 불구하고 왕권이 공고히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여로보암 왕가나 바아사 왕가 모두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2대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모반을 당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시작부터가 북이스라엘과 다윗 왕가의 갈등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보니 백성들의 올곧은 지지를 받기가 힘이 들었기에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왕은 - 왕권 강화를 위해서 - 여호와 하나님의 곁을 떠나는 정책을 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남방에 벧엘 그리고 북방에 단에 제단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그 위에 거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종교, 새로운 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북이스라엘만의 종교를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여로보암 왕은 무리수를 쓴 것이고 그 무리수는 철저힌 처벌을 대가로 받습니다.
    


바아사는 자신의 야욕에 의해서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백성의 지지 따위는 없었고 오로지 군대의 힘만이 그를 떠받치는 유일한 권력 도구였습니다. 그렇다보니 군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왕이 되었을 때 군대의 일개 장수에 불과한 시므리가 엘라를 쳐죽였을 때 그 누구도 엘라를 보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없고 백성의 지지도 없는 바아사 왕가는 이십여 년만에 그대로 사그라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므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백성의 지지도 없었으며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줌도 안 되는 디르사의 병력을 - 그것도 반 밖에 안 되는 - 가지고 왕권을 지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진짜 군 병력을 가지고 있는 오므리가 디르사 즉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찾아오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 왕궁에다가 불을 놓고 그 안에서 자살을 하고 맙니다. 시므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도 분명히 큰 문제이지만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그 왕권을 지킬 수 있는 전략도 없고 자신을 보호할 병력도 없는 상태에서 모반을 일으켰다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오므리는 달랐습니다. 오므리는 블레셋의 성읍 깁브돈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그곳에 있다가 왕이 죽었다는 소식에 곧바로 수도로 쳐들어와 전광석화처럼 수도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시므리가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가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왕을 선포하기보다는 자신의 적대 세력인 디브니의 세력들을 쳐부수는 것도 성공하게 되는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오므리는 시므리와 달리 왕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적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 알고 있는 것을 시행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일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십이 년 동안 왕위에 있으며 디르사에서 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읍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읍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라 사마리아라 일컬었더라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23-26)
     
왕이 된 오므리는 수도를 디르샤에서 사마리아로 옮겨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 자신의 아들 아합의 아내로 두로의 공주 이세벨을 불러들여 외교를 공고히 했으며 군대의 지지를 받고 있어 북이스라엘의 혼란을 단번에 잠재우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적어도 북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오므리 왕의 출연은 환영할만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므리 왕조는 바아사 왕조나 여로보암 왕조보다 분명히 더 안정된 삶을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다고 봅니다. 여리고 성을 아합이 왕이었을 때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가 안정되었다는 증거였으니 말입니다.
    


물론 여리고 성의 건립을 이전 그러니까 사울 왕, 다윗, 솔로몬 왕이었을 때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호수아의 저주가 서려 있기 때문이기에 벧엘 사람히엘이 여리고 성의 건립을 시도하게 된 것은 과거 여호수아의 저주가 이제는 흐릿해졌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더이상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이북이스라엘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아합이 왕이었을 때는 바알과 아세랑 신앙이 북이스라엘 전국을 휩쓸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이 그 안에서 살아남기는 분명히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시므리와 오므리의 차이점은 시므리는 모반하여 왕이 되기 이전에 자신이 왕의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는지, 군대가 있는지, 백성의 지지가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아둔한 자였다는 것에 비해 오므리는 백성의 지지를 받아 - 반 쪽이기는 하지만 - 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로 그 때부터 어떤 식으로 해야 왕이 될 수 있는지 파악하고 전략 전술과 병력 기동을 전광석화처럼 해내어 수도에서 왕이 된 시므리를 자살하게 만들고 자신의 대적인 디브니를 붕괴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왕으로서 사마리아로 도성을 옮겨 - 왕궁이 불탔기 때문에 -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둘의 같은 점은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에 집착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방법 중 가장 저열하고 엄혹한 모반과 전쟁을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권 쟁탈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뜻,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오므리의 아들 아합 때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서 엘리야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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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사는 북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창시했던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유다의 아사왕을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군사력을 뽐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자신의 수하 장수 중 하나였던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바아사와 엘라 중심의 왕조는 그대로 철저히 멸망하게 되었으며 멸족을 당하게 되었으며 다시는 회복할 수 있는 여지마저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여로보암 왕조에게 했던 바로 그대로 바아사는 그 아들대에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세워진다라는 것은 한 국가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 그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기반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공직의 자리에 있든 있지 않든간에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게 되는 것은 그 시대마다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뒤에 홍준표 후보가 종북 빨갱이 여론을 몰아왔지만 대통령이 되지 못했던 것은 이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엄정한 심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투표를 통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고 자치단체장을 뽑습니다. 즉 선출직 공무원을 최고위직으로 뽑고 그들로 하여금 다양한 임명직 공무원과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게 하여 국가를 운영하게 위임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국민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국민의 거부를 받게 되는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최소한 다음 대통령이 뽑히는 바로 그 선거에서 여당이 아닌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하게 되어버립니다.
      
지금의 시대,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로서는 그러한 형태의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만 과거 왕조가 성립이 되었던 바로 그 때는 다양한 이유로 정권교체가이뤄집니다. 국가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왕조만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새로운 왕조가 설립이 되기도하고 광해군이나 연산군에 이어 인조나 중종이 왕이 되는 왕만 바뀌는 상황이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 이전 헤브루 왕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국가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경영해야 하며 하나님의 의자가 국가 정책에 투영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이 적어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나답에게는 없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나라는 바아사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도 여로보암과 나답처럼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아사와 엘라의 왕조가 시므리의 왕조 -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 로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이르시되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왕상 16:1-4)
      
성경은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예후 선지자의 입을 빌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된 바아사와 엘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범죄하게 하였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이집트에서 해방하게 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언약을 하였으며 여호수아가 죽기 이전에 세겜에서 하나님과 다시 한 번 언약을 합니다. 즉 갱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인간 왕을 요구하였으며 인간 왕이 만들어지게 됨으로 인해서 각각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왕의 명령에 따라, 혹은 왕의 정책에 따라 각각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경제권, 그리고 종교에 대한 권리마저도 휘둘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 시대에 하나님을 많이 떠났지만 개개인의 잘못이었던데 반해 인간 왕이 정책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그 잘못이 전파가 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울왕이 버림받고 다윗왕이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사울왕보다도 다윗왕이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섬기고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로돌아왔습니다. 정책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후반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치리에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그의 정책이 하나님을 버리는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반기, 그의 노년기에는 그의 처첩들이 자신들의 우상을 섬길 수 있는 장소를 요구하였고 솔로몬왕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그 자신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됨으로 인해서 본을 보여야 할 왕이 하나님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 정책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본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섬기는 것이지만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정책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요시야도 다른 나라와 외교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이 사랑을 주셨던 이유, 그들의 나라가 하나님 안에서 견고하게 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정책이 우상에게 나라 백성들이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게 백성들을 견인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왕이 누구를 섬기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왕이 자신의 위치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정책적으로 그의 말에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아사와 엘라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도록 방치하였고 오히려 더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도록 바아사와 엘라를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아사와 엘라를 여로보암과 나답처럼 철저히 소멸시켜버렸던 것입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하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지휘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엘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상 1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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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왕상 15:11-15)
    
꼭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국왕은 단순히 권력을 유지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국왕의 자리는 정책을 결정하고 외교에 힘을 쓰며 자신의 왕권과 국가 자체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권력투쟁을 할 수도 있고 형제들과 같은 왕족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왕권을 지킬 수도 있지만 왕위를 위해서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국왕은 자신이 위에 서 있는 동안 어떠한 형태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국가의 살림을 늘리기 위해서 국가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어떤 나라와 외교를 단절하고 어떤 나라와 외교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국왕의 잘못으로 국가가 망했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국왕이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사왕은 아버지 아비얌과 할아버지 르호보암의 사례를 참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참고한 결과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정책을 결정하자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어머니인 마아가가 우상숭배를 하자 어머니를 폐위시키고 아세라 상을 부셔버립니다. 남색하는 자를 내쫓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도록 백성들을 독려합니다. 산당을 그대로 놔두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의 행보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왕상 15:17-21)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북방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쳐들어온 것입니다. 바아사는 라마를 건축하였는데 그곳이 교통의 요충지이다보니 아사 입장에서 아니 남유다 입장에서는 목숨줄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아사왕은 바아사가 쳐들어 오기 이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습니다. 아니 온전히 섬겼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아사는 자신을 공격해왔고 하나님은 막아주셔야 하는데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아사왕은 하나님께서 빨리 해결책을 주셔야 하는데 그 해결책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종교개혁은 바아사가 쳐들어온 이후에 완전히 끝이 났고 아사왕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세상의 방법, 인간 왕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나섭니다. 아사왕은 왕궁의 보물뿐 아니라 성전에 바친 보물들을 모두 다메섹의 왕 벤하닷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벤하닷은 아사왕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직접 군대를 거느려 북이스라엘의 요충지를 쳤고 결국 남유다를 틀어막으려고 했던 바아사는 벤하닷을 방어하기 위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마의 바아사가 쌓아놓은 석재들과 목재들을 이동시켜 베냐민 땅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합니다. 아사왕이 그 역사를 이끌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사왕 입장에서는 혹시 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긴 것, 종교 개혁했던 것이 쓸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사왕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바아사가 쳐들어올 때까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던 그는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들어오지 않자 하나님을 버려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속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봅니다. 결국 아사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라고 자신을 질책하는 선지자 하나니를 가두고 발병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지 않고 의원을 의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겠으니 하나님 저에게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시옵소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주님께서 제게 어떠한 것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씨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돌밭에 뿌려진 씨앗을 이야기합니다. 자양분이 있어 그 씨앗은 자라기는 하지만 세상의 환란이나 박해가 올 때 곧 넘어지는 자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아사왕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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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왕상 14:21)
    
기원전의 시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국가 종교를 신봉했습니다. 야훼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던 그들은 태평성대를 꽤 오랫 동안 누립니다. 초기 사울 왕의 시기를 거쳐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가히 태평성대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한 왕권과 광대한 영토, 그리고 많은 재화들이 넘쳐나는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며 그들이 그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는 못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헷사람 우리아를 적군의 손으로 죽여버리는 살인죄를 지었으며 솔로몬은 여러 이방인 여자들을 취하고 그들과 함께 이방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대에 태평성대를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셨으며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왕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윗의 왕족들 그 후손들이 잘 한다라는 한계 내에서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수많은 죄들이 다윗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그가 있었던 시대에는 덮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면 솔로몬의 죄로 인해서 르호보암은 오롯이 자신의 믿음으로 아니 믿음으로 보여지는 하나님을 믿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로 인해서 영토가 줄어드는 그 상황 속에서 많은 레위인들이 몰려왔을 때만 해도(대하 11:13-17) 르호보암은 선대 솔로몬 왕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이후에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버렸으며 하나님을 믿는 그 행동마저도 버려버렸습니다.
    
그렇게 되자 선대의 도움도 없던 - 그 자신이 암몬 여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더 - 르호보암은 더 악한 죄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르호보암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르호보암은 이집트 바로인 시삭에게 침입을 당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지만 일정 정도의 처벌을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즉 시삭 왕은 남유다의 성전과 궁전의 보물들을 모두 가져가버리게 되었고 결국 남유다의 찬란한 영광의 상징이었던 수많은 보물들은 이집트로 넘어가버리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기매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왕상 14:25-28)
       
성전을 오르내리는 바로 그 길에 르호보암은 보았을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반겨주는 솔로몬 시대의 그 금방패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시대를 상징하는 놋방패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후에도 르호보암은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였고 제대로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다윗의 왕가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의 후예인 그는 그들처럼 영광스러운 헤브루 왕국의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스러져가는 왕국의 시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열왕기상 14장 21절부터 31절까지는 르호보암 왕의 사적에 대해서 요시야 시대의 서기관들이 써내려간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르호보암의 어머니인 암몬 사람 나아마 이름이 21절에 그리고 31절에 쓰여진 것입니다. 이방인과 혼약을 맺지 말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솔로몬의 범죄가 결국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죄책으로 따라오게 되었고 암몬 사람 나아마라는 이름이 르호보암의 첫 출생과 마지막 죽음에 적혀 있는 것으로 요시야 사관들은 르호보암 왕의 일생을 담백하게 정리해버립니다. 르호보암 왕은 솔로몬의 잘못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입니다.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왕상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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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왕상 14:1-4)
      
아시다시피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세운 이유는 종교를 새롭게 바꾸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컸습니다. 새롭게 나라를 창설하고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자신에게 돌아온 바로 그 때 남유다보다 분명히 북이스라엘이 영토도 더 많았을 수밖에 없으며 인구도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에는 삼대 절기가 있으며 이 삼대 절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 대부분의 성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로보암은 자신으로 향했던 백성의 마음들이 남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 그의마음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맞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위해서 누군가의 영토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칫 그 쪽의 왕의 회유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암살할 수도 있으며 자칫 예루살렘 성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시위로 인해서 왕위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여로보암 왕은 분명히 자신의 살 길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 길을 마련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최악의 방법이었습니다. 금송아지를 세워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라고 말하게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의를 드리던 많은 제사장들 즉 레위 자손 중 아론의 후손들은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하나님 외에는 섬기려 들지 않았기에 그러한 그들을 회유하기보다는 새로운 제사장 즉 새로운 종교 가신 계급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그의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생을 살았습니다. 왕으로서의 생애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을지언정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연민이든, 수치심이든 그에게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과 왕위에서 멀어지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여로보암 왕은 왕위에서 멀어지는 것을 배격했을 것이 분명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인 아비야가 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아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를 찾기에는 당시 의술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800-900년대였으니 의술이 좋았을리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신이었고 그가 믿을 수 있었던 신은 바로 자신을 왕위에 올려주었던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다쳤을 때 그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찾았던 것은 그나 그의 왕조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 주력하지 않았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면 여로보암과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금송아지가 그들 곁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신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백성이 신으로 여기게 하였던 것뿐이었고 그들 스스로는 내심 여호와 하나님을 더 신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러한 신뢰 자체보다도 자신의 왕권, 자신의 영토, 자신의 앙위가 더 소중했기에 하나님을 버렸고 방치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랬기에 고대 여호와의 성지였으나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 유폐가 된 걷이나 다름이 없었던 실로에 아히야가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히야는 자신을 찾아온 변장한 여로보암의 아내를 하나님의 도움으로 인지하고서 그에게 말합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히야는 죽을 것이고 여로보암 집안 자체가 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기회를 주셨으며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전권 아래서 보다듬기를 바랐지만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왕권 아래 백성을 제어했으며 자신의 왕위가 견고하도록 자신과 대적할 가능성이 있는 남유다 왕 르호보암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래놓고서 자신의 아들이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마치 병만 고쳐주고 그대로 버려져 있으라는 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써먹으려고 했으나 아히야도 여호와 하나님도 그러한 여로보암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멸망의 예언을 서비스로 보내줍니다.
    
다른 이스라엘 왕들과 다르게 여로보암은 아이가 죽어가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신이라는 것, 그리고 병을 고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왕위를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찾아갔으며 하나님께로 오려고 하는 백성들의 앞을 금송아지로 막아섰습니다. 여로보암 왕이 망한 것은 하나님을 신이라고 여겼지만 자신이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 자체를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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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1-15)
                   
과거가 미화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가 좋았지라는 말은 비단 어르신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군대 생활을 힘들게 하였어도 제대하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군대 생활을 추억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그 사람에 대해서 좋은 추억을 간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군대를 가라고 하면 갈려고 하는 사람은 극히 적으며 이전에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있던 사랑과 다시 만나면 대부분 헤어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은 기억을 선택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생활할 때 힘들었던 부분은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고 좋았던 기억만 남았던 사람들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그곳에서의 좋지 않았던 기억, 그리고 그곳에서의 힘들었던 기억이 샘솟듯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 좋았던 기억만 있는 -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 헤어졌던 이유가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문제가 됩니다. 결국 아무리 좋았던 곳도, 아무리 좋았던 사람도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현실에 불만이 있을 때이며 현재에 고통이 있을 때입니다. 이러한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제대로 없을 때에 혹은 현재가 별로 좋지 않을 때에 과거의 좋은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현재의 불만을 터트리는데 이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억하고 있는 그 과거, 우리가 기억하고 있었던 그 찬란한 때 그 때가 항상 행복했던 때였던가요. 사실은 그 반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있었던 시기는 그들이 노예였던 시기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민 11:4-7)
                        
그들이 먹는 것에 값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배불리 먹을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종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생의 떡을 먹어야 하며 주인의 심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그 화풀이 대상도 되어야만 합니다. 이집트 왕 파라오가 심기가 거슬렸을 때 그들은 밤새도록 차가운 들에 나가 벽돌에 사용할 짚을 찾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거는 이미 잊어버리고 지금의 상황과 정확하게 반대의 측면 - 좋은 의미로서의 과거만 -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만이 생기는 것에 대해서 과거의 현실을 직면하라는 말로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엄혹했고 혹독했다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들으며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미화된 과거를 추억하고 있는 귿르에게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사실을 집단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모세가 나자빠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을 설득할 수 있는 힘도, 백성이 달라고 하는 고기를 줄 수 있는 방법도 없는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 가지가심을 구합니다. 그러한 모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도자인 모세에게 새로운 지도자들을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집중되어 있어 모세를 좌절하게 했던 백성들의 원망을 다른 지도자들과 나누라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원망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광야 기간 속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그 백성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장정만 육십만 전체적으로 이백만 정도 되는 인원이 움직이는 대 역사입니다. 그 거대한 여정 속에서 불만이 없을 수 없고 실패가 없을 수 없으며 힘든 것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그들이 힘들어 하지 않도록 그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도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했던 하소연이 이해는 되지만 그가 그 위치에 있다면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할 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의 위치해 있다면 과거가 그렇게 미화될만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현재의 상황을 감사하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렇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화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구해야만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인 것입니다.
    
지도자로 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지도자의 관리를 혹은 지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나 그 사람들의 요구를 듣기는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과거를 미화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고기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내려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그들을 선동했던 무리들을 하나님은 처벌하셨습니다.
   
선동했던 사람들을 처벌한다고 해서 이 다음에 문제, 이 다음의 원망, 이 다음의 불안 요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새로운 사람들은 나오게 되고 그러한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결국은 지도자들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들부터 포로기의 선지자들이 출애굽 이후의 광야 여정을 이상향으로 삼은 것은 하나님께 많이 두드려 맞기는 했고 지도자들의 머리는 빠개졌을 지는 몰라도, 백성은 원망하느라 매번 혼났을지 몰라도 그렇게 부대끼며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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