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삼상 30:18-25)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일전을 벌이기 바로 전에 가드왕 아기스의 신하로서 블레셋의 편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했던 다윗과 그 휘하 부장들은 다른 블레셋 지도자들에 의해서 전쟁에 임하는 것이 좌절됩니다. 바로 전쟁이 있던 그 날 다윗과 그 부하들이 그들의 본거지 성읍인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자신의 성읍이 불타 있으며 그들의 가족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도둑맞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허락하셨고 다윗은 그들의 것을 모두 탈취해간 아말렉 족속들을 따라가다가 브솔 시내에서 200명이 낙오되어 그들을 거기에 머무르게 하였고 나머지 400명으로 아말렉 족속을 따라가기에 이르러 그들을 모두 파하고 그들이 가지고 간 모든 것을 다시 돌려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00명과 함께 브솔 시내로 돌아와 그들을 맞이하는 200명의 낙오 병사들을 보게 됩니다.
    
낙오된 이들에게 가족만 돌려보내고 그들을 내쫓자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전리품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나누는 법을 다윗 시대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미혹케 한 미디안 족속의 다섯 왕을 죽이고 브올의 아들 발람을 죽인 다음 그곳에서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사람들과 가축들 그리고 많은 패물들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오는 그들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모든 전리품의 반을 전쟁을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눠줘라고 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눠준 이유는 다윗이 낙오한 200명의 군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준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가든 나가지 않든 모두 하나님의 하나된 백성입니다. 하나된 백성으로서 전쟁 속에서 얻어낸 전리품은 모두 함께 나눠야만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떠난 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된 이스라엘이라는 기치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전쟁을 나간 사람이나 전쟁을 나가지 않은 사람 모두 전리품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민 31:25-30)
    
여기서 하나더 전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가진 전리품 중에 오백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주게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전리품 중에 오십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에게 전리품을 나눠주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그들에게 양식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 때도 지금도 이러한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그러한 전통이 반 정도만 지켜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담임 목회자나 혹은 일부 부교역자에게는 그들의 양식을 풍성하게 주지만 교회 안에서 일하는 많은 빛을 보지 못하는 담임 목회자나 일부 부교역자를 제외하는 사역자들에게는 제대로 그 처우를 좋게 대우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식의 위로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양식을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공금해주라고 다양한 율법을 통해서 명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버려두고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때에 그러한 일들이 있었고 말라기 때에도 마찬가지로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든 돈을 잘 못 버는 사람이든 최소한의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 공급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로 싸운 사람이 일만이천 명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최소 육십만, 최대 이백만이었습니다. 이 두 세력에게 반씩 전리품을 나누게 한 것은 이스라엘 군사로 싸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전리품을 주어 그들로 불평하지 않게 하였으며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양식이 될 수 있는 전리품을 주어 최소한의 재화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의 인원이 적었으므로 그들에게 오백분의 일을 레위인의 인원이 많으므로 그들에게 오십분의 일을 줌으로 해서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을 받는 존재들임을 다시 한 번 명시하였습니다. 그들이 최소한의 의식주가 채워줘야만이 하나님의 성막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은 손해보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내보이지 말고 교회를 섬기는 담임목회자부터 교역자들 그리고 행정 간사들까지 최소한의 임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느 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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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다 진영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모세가 군대의 지휘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3-16)
        
이스라엘의 대적 미디안을 징벌하고, 절멸시키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승전보를 울리고 탈취한 것과 노략한 것 모두를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엘르아살이 그들의 탈취물을 보고 기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히려 이스라엘 군사들이 탈취해온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며 노하였습니다. 모세가 보기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스라엘 안에 죄악들을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들여오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멸망시키라고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군사들은 모세를 통해서 듣게 된 하나님의 명령의 의도를 명확히 알아야 했고 그 의도대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한 자신들에게 도취된 체로 그곳에서 탈취할 수 있는 것과, 노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 이후에 그들의 부모에게 찾아가 자랑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 쪽으로 유혹하던 미디안 여인들을 트로피로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24천 명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잊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사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지기 이전에 이 문제를 황급히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법궤를 부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치하였던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이스라엘을 우상 쪽으로 미혹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여인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중 남자들도 모두 죽이고 오직 미혼인 미디안 여성들만 들여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스라엘에게는 고된 아픔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이후에 사무엘 사울 시대에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모두 죽이고 그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같이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좋은 것들은 살려놓고 아각 왕까지 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보다 제사를 좋아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백성이 치부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인지라 우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왜곡되이 해석하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에 귀를 막고 있는 것 그 자체도 분명한 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명령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묵상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띄엄띄엄 읽어서도 안되며 기도를 건성건성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묵상하고 확인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 함부로 하나님 말씀을 건너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핑계를 대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 핑계를 대고 부모를 섬기지 않았던 유대인 랍비들의 고르반 전통과 일반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기에 결국 그 쪽으로 완전히 빠져버리기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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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 여호와의 원수를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민 31:1-5)
        
발람과 발락 이야기는 민수기 즉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기의 끝자락에 있는 신비로운 에피소드입니다. 발람과 발락 이야기에서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도 중심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며 그들이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에서도 이스라엘이 중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야로 보여지는 이스라엘 전체 무리들에 대해서 묘사가 나올 뿐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람이 사람과 연결이 되는 것 그 자체는 분명히 선하고 나쁘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었을 때 그들은 당연히 다른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청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주의 깊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봐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하며 따라서 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을 나락으로 빠뜨릴 계략을 꾸미게 됩니다.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바꿔치기 하려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했던 발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었던 미디안 백성들, 그리고 그의 뜻에 동조했던 미디안 왕들과 함께 바람은 최종적으로 멸망받고 말았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수 있었던 발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 곁으로 떠나가기 전에 미디안과의 일 즉 싯딤에서의 일을 결착지으려고 합니다. 신정국가 이스라엘에게 왕이신 하나님과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이간질을 하려고 했던 죄는 그 어떤 죄보다도 더 중하고 큽니다. 그렇기에 미디안의 모든 백성, 미디안의 모든 왕들 그리고 발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철저하게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손에 절멸시키려고 했으며 실제로 이스라엘은 24천명이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단 만이천 명의 병사로 미디안은 삭제당하고 맙니다. 바알브올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은죽게 되었고 그를 따라서 동조하였던 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 즉 미디안의 다섯 왕들은 절멸되었으며 백성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양육하시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고 좁은 문을 통해서 좁은 길을 가기보다는 넓은 문을 통해서 넓은 길을 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보다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브올의 아들 발람을 통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 천 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 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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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삼상 13:19-22)
       
단순히 골리앗이 있어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약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 지파마다 독자적으로 생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 암몬 왕 나하스가 므낫세 길르앗 지파를 침탈하려고 하였을 때 나머지 지파들이 그 소식을 잘 몰랐던 것은 일단 소식을 전하는 통신 기반이 당시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도 하였지만 길르앗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나머지 지파들이 알 정도로 그들이 가깝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블레셋이었습니다. 사울 왕 2년의 때에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였는데 사울 왕 이전에 사무엘은 미스바 전쟁을 통해서 블레셋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문제는 블레셋의 영향력은 단순히 전투병의 우위를 넘어선다라는 지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전쟁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전쟁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울 왕과 요나단 외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쟁기와 같은 농기구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블레셋의 농기구를 수리하는 곳 즉 철공에 가서 수리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 철공이 생기도록 블레셋이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철공이 없다라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블레셋의 힘의 영향권 자체가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어서 이스라엘이 함부로 철공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사울 왕이 세워진 것 그 자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속국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이 철기문화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 농기구는 어찌 어찌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철공을 소유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블레셋이 주변 국가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며 특히 산지 국가였던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만들거나 그들의 영토를 빼앗기 위해서 시도를 이번 한 번만 한 것은 아닐텐데 이스라엘에 철공을 은밀히라도 만들지 못했다라는 것은 아직 이스라엘이 철기 문화를 완벽하게 수용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은 블레셋의 왕 중 하나인 아기스의 수하로 들어가서 시글락이라는 도시를 다스리게 되는데 추측컨데 이 때 다윗은 철기 문화를 흡수하게 되고 이후에 다윗은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이 때 가지고 간 철기 문화로 인해서 이스보셋과의 싸움에서 승전을 거두게 되고 결국 다윗 왕조와 철기 문화는 헤브루 왕국을 팔레스타인 지역 즉 시나이 반도의 패자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이스라엘이 그렇게 허약했던 것은 왕권 강화에 실패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들이 철공을 제대로 소유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이방 세력들에 비해서 문화 향유를 하지 못하였고 무기들을 만들기가 힘이 들었던데 반해 다윗은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면서 새로운 문물들을 많이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사울이 얻지 못했던 철기 문화 즉 철공마저도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저마다 가족을 거느리고 가드에서 아기스와 동거하였는데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자 아히노암과 나발의 아내였던 갈멜 여자 아비가일과 함께 하였더니 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삼상 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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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에게는 사무엘이 있었고 여로보암에게는 다윗 왕조가 있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과 종교 권력 그리고 각 지파들만의 세력이 있는 상태에서 왕권 강화를 노렸고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게 되면서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전과 그것을 지키는 다윗 왕조가 있었습니다. 사울 입장에서,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종교 권력과 지파 세력을 물리치고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것이 참 만만치 않았습니다. 둘의 선택은 갈렸지만 둘다 멸망받게 됩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삼상 13:8-12)
      
사울이 사무엘을 무시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권이 워낙에나 취약하고 적들이라 할 수 있는 이방 민족들의 세력은 워낙에 강대하다보니 백성들이 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 살 길을 찾아서 흩어지게 됩니다. 그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인데 문제는 사울은 그러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권한조차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렸으나 마침 또 사무엘은 제 때에 오지 않게 되었고 결국 그는 자신에게 없는 제사 권한을 침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불순종하게 된 것, 사울이 사무엘의 권한을 침탈하게 된 것은 백성들이 자신을 떠나버릴까봐였습니다. 이후에도 계속 나타나지만 사울은 자신이 사무엘에게 즉 여호와 하나님에게 버림 받을까봐도 두려워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약한 왕권을 가진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까봐, 혹은 다윗에게 갈까봐 일생을 두려움에 허덕였습니다. 그 스스로는 강한 척 하였지만 다윗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성읍 사람들에게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자신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왕권을 해치는 사람의 말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가 원한 것은 사울 왕조의 공고함이었지만 그가 원한 것 그것 하나를 만들어가려고 하지만 주변 환경이 그를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이방 민족들은 강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주는 것 없이 자신만 바라보며 그러한 이방 군사들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면서도 위험할 것 같으면 언제나 흩어질 수 있는 모래알 같은 군사들만 그의 주변에 있었으며 사무엘은 그를 도와 사울 왕조의 왕권을 반석 위에 두는 것 자체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그 혼자 스스로 하였습니다. 좀 강하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병사로 데려다 놓았으며 이방 민족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위상을 높이려고 하였고 사무엘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러한 그의 노력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그는 결정적인 불순종을 하게 되면서 - 이스라엘의 말에 따르기 위해서 -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 12:25-29)
      
여호와의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으로 그는 왕권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를 솔로몬 왕은 추격하였고 그는 이집트로 도망가 있었다가 솔로몬이 죽게 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북이스라엘의 세력들의 지지를 얻어 르호보암 왕과 담판을 벌였고 르호보암 왕이 북이스라엘의 요구를 거부하게 되자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윗 왕조가 북이스라엘에게 고된 노동을 하라고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만약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에게 좋은 말로 계속 유혹하게 되면 어느 순간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이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수 있겠고 그렇게 되는 순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은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최소한 세 번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스라엘 사람 전부 - 북이스라엘 백성까지 포함하여 - 가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약 북이스라엘 백성을 회유하게 된다면 그 때는 여로보암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백성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도록 남쪽에는 벧엘, 북쪽에는 단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여로보암의 뜻에 따르게 되고 결국 그도 왕권 강화를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떠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살기 위해서, 왕권 강화를 위해서 행한 것이지만 그의 행동 그 자체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동이 된 것입니다.
    
처음 왕조가 건립이 되어 백성들도 사무엘도 그리고 사울 왕 본인조차도 왕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였고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기에 그 속에서 사울의 왕권 강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로 인해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다윗 왕조가 자신을 침탈할 것이라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북이스라엘은 대대로 왕조가 하나님을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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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삼상 13:1-4)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후에 블레셋 사람들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사실 블레셋과 싸움이 붙은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사 시대에도 그리고 사무엘 사사 때에도, 사울이 왕이 될 때에도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에 쳐들어갔습니다.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양식을 약탈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의 힘을 빼놓아서 이스라엘이 강대국으로 자라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암몬 왕 나하스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이 외세에 침략을 당하는 이유를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보다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인간 왕을 달라고 사무엘과 여호와 하나님께 부탁하였으며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사울 왕이기에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계속 전쟁을 치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힘이 좋은 장사나, 용맹한 사람이 주변에 보이면 그를 군인으로 쓰기 위해서 징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사울이 영토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이스라엘은 전쟁에 매번 동원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원래 왕이 되는 것을 그렇게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 38에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나귀를 찾아다니는 어찌 보면 선량한 시골 촌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무엘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왕이 되었고 왕으로서 2년의 세월을 살아갔습니다. 더 이상 그는 시골의 촌부가 아니라 군인들을 거느린 왕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싸움에 노련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와 그의아들들 그리고 그의 군사들은 매번 싸움에 동원되어야만 했습니다.
    
후에 있을 사울의 불순종의 죄 즉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된 이유도 백성들이 좋은 것들 즉 가축들을 살리자고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성들에게 자신의 죄를 떠넘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는 왕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다윗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을 때에도 사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으며 사울이 죽은 뒤에도 이스보셋이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할 정도로 사울은 신망 받는 군주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삼상 13:8-12)
    
그러했기에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이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린 사울 왕의 딸 미갈을 다시 돌려보내달라고 한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부은 왕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울 왕의 딸이라는 신분을 가진 미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게 미움 받는 왕이 아니라 사랑 받는 왕이었으며 왕의 명령을 두려워서 섬기기보다는 이스라엘은 왕을 따랐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울의 치명적인 약점은 역시나 백성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백성들이 흩어지고 백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게 된 사울은 백성들 앞에서 직접 제사를 드렸고 사무엘은 이후에 오게 됩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였지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제사를 드린 왕 사울에 대해서 잘못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사무엘과 사울의 불협화음의 시작, 여호와 하나님과 사울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사울이 백성의 뜻을 너무 잘 들어주었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눈치를 너무 봤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그의 왕위가 아직 공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만약 다윗처럼혹은 솔로몬처럼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맹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군사력은 형편없었고 그의 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백성이 없으면 허수아비 왕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마치 북이스라엘의 창시자 여로보암처럼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고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을 했으며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그러한 가운데서도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거의 빛을발휘하지 못했으며 그는 왕권이 완벽해질 때까지 왕위에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노력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지만 결국 그는 사람에게 좋게 하고자 하나님과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는 불안한 시작과 함께 불안한 왕의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삼상 1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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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삼상 10:17-19)
        
사무엘은 처음부터 왕이 세워지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와서 사사였던 그리고 사사들의 아버지였던 사무엘에게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자신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하였을 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을 마뜩치 않아 하실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사사는 하나님의 전권을 대리하는 사람일 뿐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스라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에 사무엘도 하나님도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해주라고 명령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미 사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가는 길에 기름을 머리에 부어 왕으로서 이미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예언을 하였지만 그것과 더불어 음식을 대접하고, 기름을 부은 바로 그 사이 저녁에서 심야까지 지붕 위에 사울과 앉아서 대담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뽑으신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이 바로 자신이 집 라마로 돌아간 것과 달리 사무엘은 사울을 자신의 집에 유숙하게 하고 그와 더불어 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공유했다라는 점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삼상 10:21-24)
    
비록 소극적이고 소심한 사울이었지만 사무엘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였다라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왕을 택하는 바로 그 자리에 참석은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소심함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짐들 사이에 숨어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가 짐들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왔을 때 사람들보다도 머리 하나만큼 더 큰 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울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즉 사울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만큼 아름다웠으며 그럼에도 소심하기도 하지만 겸손한 왕이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사울을 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하였지만 아직까지는 사울을 정식으로 왕으로 옹립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추측이기는 한데사울을 왕으로 옹립하지 않은 이유는 사울이 왕으로서 최소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전과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사무엘에게도 필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고 아직 왕을 세워본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도 사울을 어떻게 왕을 세워야 할 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울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왕으로 이미 택함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공증은 받았지만 그러나 정식으로 왕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닌 아직까지는 미묘한 위치에 있는 그는 그러한 그의 위치에 대해서 조급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아람 왕 하사엘처럼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 다급하게 일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왕이 되도록 하신다면 제비뽑기 중에 자신이 뽑힌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이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 방도를 만들어 주실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울의 생각은 곧 응답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삼상 1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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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민 23:1-5)
   
하나님께서 그의 일을 행하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사람입니다. 그의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에 그의 사람이 그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연약한 존재이고 자신을 위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계십니다. 발람이 모압 왕 발락의 말을 들었을 때 발람이 돈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바로 진격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같이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발람은 두 번째 모압 왕의 사신들이 도착했을 때 하나님의 기준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돈을 천장까지 쌓아서 준다고 해도 가지 않겠다 - 를 고백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다시 한 번 타협해볼 생각으로 두 번째 온 사신들을 유숙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단 아니라고 한 사안에 대해서 발람은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신명기에 있는 기록에 따르면 38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원래 모세는 바로 진격해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군을 보내기를 요청하였고 모세는 그러한 그들의 요청을 따랐습니다. 모세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그 정탐군에게 듣지 않는다면 바로 이집트로 떠나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자신의 뜻대로 사람들을 이끄시지 않고 그들의 뜻대로 일단은 버려둡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민 23:19-21)
    
그러나 결정적일 때에 그들을 잡아주시고 그들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들어가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상태이고, 자신의 결정을 해버린 상태이기에 돌아서기에는 많이 늦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신경써야 하는 대목은 민수기 23장 21절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입니다. 여기서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과 왕은 동치입니다. 즉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라는 사실을 발람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발람은 자신이 자신의 왕이었기에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편에 서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당신의 사람이 당신의 편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롯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기에 그들을 위해서 기다려주십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민 23:25, 26)
  
발람의 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인지 알려주고 있다면 또다른 한 편 아무리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결정을 번복시키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시고 자신의 결정을 인간의 생각에 휘둘려 바꾸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곳 저곳을 옮겨다닌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기도 하고 -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그러한 하나님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인간 왕을 달라고 탄원하였지만 그러나 사무엘도 모세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왕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다른 사역자도 우리의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역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스스로 정말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뜻과 맞는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을 바로 그 한 사람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스스로를 던져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맡기고 그에게 자신의 일을 행하시게 합니다. 발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무릂을 꿇었을 때 그 때에야 비로소 당신의 일을 지시하셨듯이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시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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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민 21:1-3)
        
아랏의 왕을 치고 그 성읍을 진멸하고 그곳을 호르마라 일컫는 이스라엘 전쟁의 첫 시작은 에돔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에돔의 영토를 가로지르는 왕도를 걸어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요구를 에돔이 들어줄리 만무하지만 호르마 사건으로 인해서 에돔은 더 공포에 쌓여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전 병력을 국경으로 집결시켜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에돔을 치라고 하시면 이스라엘은 에돔을 쳤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에돔의 영토를 하나도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언하셨기에 이스라엘은 에돔의 영토를 돌아서 가나안 땅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상황 자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상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하찮은 음식 즉 만나를 먹고 싶지 않다라고 원망하였지만 실상은 돌아가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원망에 불뱀이 그들을 심판하게 되었고 놋뱀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전멸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이스라엘은 계속 걸어서 가나안 땅 근방 요단 동편 땅에 있는 아모리 왕 시혼 그리고 바산 왕 옥을 쳐서 진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보는 모압 왕 발락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모압 왕 발락은 미디안 땅에 사는 브올 사람 발람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 땅을 건너서 오고 있는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압의 왕 발락이 발람을 호출한 이유는 발람이 저주한 사람은 저주를 받고 축복을 한 사람은 축복을 받게 되었기에 그를 빌어 그의 속에서 운동하는 신의 힘을 빌어보고 싶다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습니다. 발락이 생각하기에 발람이 자신의 신을 잘 구슬리면 언제든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있고 발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모두 이뤄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발락의 신하들이 첫 번째 발람에게 왔을 때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 날 밤 유숙하라고 하였고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축복받은 민족이니 그들을 저주하지 말고 신하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데 발락은 좀더 높은 직급의 신하들을 다시 보내 발람의 마음을 회유하려고 합니다. 발람의 마음만 회유할 수 있다면 발람에게 깃든 신의 힘으로 - 발락은 그렇게 믿고 있기에 - 이스라엘을 절멸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민 22:9-13)
        

 


하나님의 마음을 이미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압 왕을 따라가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람은 발락의 신하들을 그 다음날 그대로 보냅니다. 그런데 발락은 더 직급이 높은 고관들을 한 번 더 보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발람에게 주겠으니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 이미 응답을 받았기에 명확하게 바로 거절했어야 합니다. 그가 은금을 많이 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고관들에게 하룻밤 자라고 청합니다.
    
그의 행동은 발락이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하는 발람에게 다른 곳, 이스라엘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제사를 드려서 저주를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니 식언치 않으시며 하늘과 땅 우주를 다스리시는 유일신 하나님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하룻밤 지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이 나중에 행동했던 것처럼 발람은 돈에 눈이 멀어서 명예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이 이미 같이 가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보좌를 흔드는 기도와 별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과 다를 때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사람들은 곧잘 하나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좌를 흔드는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생각이 변하게 되면 물질 축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 따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도하는 방법입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도합니다.
    
발람은 이 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최악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타이틀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자신이 키우는 나귀에게도 꾸지람을 듣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의 욕심, 자신의 생각을 더욱 의지하였기에 발람은 결국 나중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말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춰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람의 끝이 우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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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삼상 10:17-19상)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에 모여 왕을 뽑는 제비뽑기를 시행하였고 암몬 왕 나하스를 패배시킨 뒤 뽑힌 왕 사울을 길갈에서 왕으로 옹립하게 됩니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암몬 왕 나하스가 있는 이유는 길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였던 때에 사무엘이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살아계신 이스라엘 왕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버리고 - 제대로 섬긴 적도 없기는 하지만 - 인간 왕이 자신들을 다스려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국가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체제가 왕정으로 정비가 된 이후에 이스라엘이 분명히 지파 체제 그리고 사사 지도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하지만 훨씬 더 빨리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으며 왕의 반역, 왕의 타락이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이방신들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인 타락이극심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견하셨고 사무엘 또한 어느정도 인지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사울 왕의 타락 그리고 다윗 왕의 인내, 솔로몬 왕의 타락까지 사실 다윗 왕을 제외하고 처음에는 괜찮다라고 여겨졌던 수많은 왕들의 타락은 예견되어진 상태입니다. 여호사밧 왕, 히스기야 왕, 요시야 왕을 제외하고 다윗 왕처럼 하나님을 섬겼던 왕들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왕들의 타락은 계속 이어졌고 어찌 보면 왕이라면 언젠가는 타락하는 것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울 왕을 뽑 이후 이스라엘은 극도로 종교적으로는 분명히 침체의 시기를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 12:12-15)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사기 시대 이후부터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타락은 계속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왕정 시대와 사사 시대의 차이점은 사사들의 타락이 몇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기드온과 삼손 - 빈도 수 자체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또한 사사의 타락과 상관없이 이스라엘의 타락은 왕정 시대에도 사사 시대에도 계속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왕정 시대에 총체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였는가라고 물어본다면 단 하나 지도자들의 생각의 변화입니다.
    
사사 시대의 사사는 아비멜렉을 제외하고는 - 그는 사사로 불리지도 않았지만 - 자신들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사이기는 했지만 왕정으로 바로 넘어갔기에 - 적어도 사사들은 자신들이 왕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왕이신 하나님 아래에서 재판하는 사람 혹은 전쟁을 치르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여겼습니다. 물론 입다와 같이 왕으로서 보이는 조짐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언제든지 내침을 당할 수 있는 사사, 언제든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내보냄을 당할 수 있는 사사들과 다르게 왕들은 자신들이 왕이기에 자신들 맘대로 이스라엘을 재단하려고 했고 종교 행사도 맘대로 치르려고 했으며 이방 신들을 들여오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권력의 사유화, 외교로 인한 국가의 안정, 백성의 마음 다스리기 정도입니다. 이에 반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듣기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방신들이 국가를 장악한 이후에는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는 나라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말합니다. 그들이 왕을 구하는 것은 친히 왕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전쟁의 지도자로서 왕을 구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구분시키게 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정치 권력에 순응하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버려버릴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 12: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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