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1-5)

      
디셉 사람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에 가뭄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루 물을 찾아다니며 고생을 하였지만 그들이 더 찾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그만 찾으면 이 가뭄이 그칠 수 있을텐데 가뭄을 예언한 선지자 엘리야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 말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아합 왕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이었던 시돈 땅에 있었습니다.
   
차마 아합 왕은 엘리야가 이세벨의 고향에 들어가서 은신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엘리야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 3년의 시간이 지나갔고 왕이 직접 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마실 물이, 동물을 먹일 물이 북이스라엘에서는 거의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 왕에게 찾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합 왕을 만나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알로 북이스라엘을 물들인 아합 왕 앞에서 하나 남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850명의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입니다.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가라는 대결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바알과 아세라는 거짓 신이었기에 불씨 하나 송아지를 태우지 못했지만 진정한 신이자 유일한 신인 여호와 하나님은 각을 뜬 제물과 제물 사이사이를 흐르는 많은 물들을 모두 불로 핥으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만방에 선포하게 됩니다.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던 엘리야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말의 도움을 받고 움직이는 아합 왕 앞에서 뛰어가며 엘리야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북이스라엘의 모습이 멀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앞에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도륙하였고 하나님의 표적인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비를 그들의 눈 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엘리야의 생각은 순진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합왕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죽였던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비가 내렸던 사실을 이세벨에게 알렸을 때 이세벨은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사신을 - 자객을 보낸 것이 아니라 - 보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엘리야에게 선언합니다. 엘리야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 남지 못하고 남유다 지방의 가장 남쪽인 브엘세바까지 한달음에 도망을 가게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진 그를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 떡을 주고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 산, 하나님의 율법을 얻게 된 바로 그 산인 호렙산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러 가라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내며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듯이 엘리야는 광야를 사십 주, 사십 야 동안 걸어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동굴에 들어가 쉼을 취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1-14)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자신 앞에 서라고 명령하셨고 산 위에 선 엘리야 앞에 강맹한 바람이 불었으나 그 바람 가운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땅 전부를 흔들어버리는 지진이 있었으나 그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덮쳤으나 그 안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엘리야는 하나님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됩니다.
      
나약하고 나약한 선지자 엘리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을 하고 하나님 안에서 열심을 내었지만 그러나 자신에게 오는 이세벨의 살해 위협과, 북이스라엘 백성의 압박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 자체를 떠나버리고 하나님께 죽음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세상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나님께 땡강을 부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엘리야에게 아직 죽음을 허락하시지 않은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세 명의 사람을 주십니다.
  
아람의 다음 왕 하사엘, 이스라엘의 다음 왕조의 시조인 예후, 그리고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 세 명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지만 결국 엘리야는 오직 한 명 엘리사에게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아람 왕 하사엘, 이스라엘 왕 예후에게 - 예후에게는 직접 부은 것은 아니지만 - 기름을 붓습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야보다 엘리사가 더 믿음이 있었고 더 담대했으며 더 용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강대한 기적을 맛본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가뭄 그리고 하나님의 비를 내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며 우리보다 어쩌면 더 나약한 사람이었찌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순종하고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였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고 데려간 것입니다. 나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그였기에 말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왕상 1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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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아사는 북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창시했던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남유다의 아사왕을 압박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군사력을 뽐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자신의 수하 장수 중 하나였던 시므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바아사와 엘라 중심의 왕조는 그대로 철저히 멸망하게 되었으며 멸족을 당하게 되었으며 다시는 회복할 수 있는 여지마저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여로보암 왕조에게 했던 바로 그대로 바아사는 그 아들대에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 국가가 세워진다라는 것은 한 국가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 그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기반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비단 공직의 자리에 있든 있지 않든간에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게 되는 것은 그 시대마다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시대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뒤에 홍준표 후보가 종북 빨갱이 여론을 몰아왔지만 대통령이 되지 못했던 것은 이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엄정한 심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투표를 통해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고 자치단체장을 뽑습니다. 즉 선출직 공무원을 최고위직으로 뽑고 그들로 하여금 다양한 임명직 공무원과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게 하여 국가를 운영하게 위임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국민에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국민의 거부를 받게 되는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최소한 다음 대통령이 뽑히는 바로 그 선거에서 여당이 아닌 야당에게 정권을 이양하게 되어버립니다.
      
지금의 시대, 그리고 지금의 우리나라로서는 그러한 형태의 정권 교체가 가능하지만 과거 왕조가 성립이 되었던 바로 그 때는 다양한 이유로 정권교체가이뤄집니다. 국가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왕조만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새로운 왕조가 설립이 되기도하고 광해군이나 연산군에 이어 인조나 중종이 왕이 되는 왕만 바뀌는 상황이 이어지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 이전 헤브루 왕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국가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경영해야 하며 하나님의 의자가 국가 정책에 투영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이 적어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나답에게는 없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나라는 바아사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아사와 그의 아들 엘라도 여로보암과 나답처럼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아사와 엘라의 왕조가 시므리의 왕조 -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 로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이르시되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더라(왕상 16:1-4)
      
성경은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예후 선지자의 입을 빌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된 바아사와 엘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범죄하게 하였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이집트에서 해방하게 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언약을 하였으며 여호수아가 죽기 이전에 세겜에서 하나님과 다시 한 번 언약을 합니다. 즉 갱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인간 왕을 요구하였으며 인간 왕이 만들어지게 됨으로 인해서 각각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왕의 명령에 따라, 혹은 왕의 정책에 따라 각각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경제권, 그리고 종교에 대한 권리마저도 휘둘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 시대에 하나님을 많이 떠났지만 개개인의 잘못이었던데 반해 인간 왕이 정책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그 잘못이 전파가 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울왕이 버림받고 다윗왕이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사울왕보다도 다윗왕이 깨끗해서가 아닙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섬기고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께로돌아왔습니다. 정책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후반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치리에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그의 정책이 하나님을 버리는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반기, 그의 노년기에는 그의 처첩들이 자신들의 우상을 섬길 수 있는 장소를 요구하였고 솔로몬왕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으며 그 자신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게 됨으로 인해서 본을 보여야 할 왕이 하나님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 정책 또한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본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섬기는 것이지만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정책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요시야도 다른 나라와 외교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이 사랑을 주셨던 이유, 그들의 나라가 하나님 안에서 견고하게 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정책이 우상에게 나라 백성들이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게 백성들을 견인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왕이 누구를 섬기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왕이 자신의 위치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정책적으로 그의 말에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아사와 엘라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도록 방치하였고 오히려 더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 백성을 치리하도록 바아사와 엘라를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아사와 엘라를 여로보암과 나답처럼 철저히 소멸시켜버렸던 것입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 엘라가 디르사에 있어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에 그 신하 곧 병거 절반을 통솔한 지휘관 시므리가 왕을 모반하여 시므리가 들어가서 그를 쳐죽이고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곧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이라 시므리가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바아사의 온 집안 사람들을 죽이되 남자는 그의 친족이든지 그의 친구든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바아사의 온 집을 멸하였는데 선지자 예후를 통하여 바아사를 꾸짖어 하신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으니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엘라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상 1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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