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왕상 19:1-5)

      
디셉 사람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에 가뭄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떠나버립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루 물을 찾아다니며 고생을 하였지만 그들이 더 찾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그만 찾으면 이 가뭄이 그칠 수 있을텐데 가뭄을 예언한 선지자 엘리야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 말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아합 왕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이었던 시돈 땅에 있었습니다.
   
차마 아합 왕은 엘리야가 이세벨의 고향에 들어가서 은신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엘리야가 그곳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었지만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 3년의 시간이 지나갔고 왕이 직접 물이 있는 곳을 찾아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마실 물이, 동물을 먹일 물이 북이스라엘에서는 거의 떨어지고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 왕에게 찾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합 왕을 만나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알로 북이스라엘을 물들인 아합 왕 앞에서 하나 남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850명의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입니다. 누구의 신이 진짜 신인가라는 대결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바알과 아세라는 거짓 신이었기에 불씨 하나 송아지를 태우지 못했지만 진정한 신이자 유일한 신인 여호와 하나님은 각을 뜬 제물과 제물 사이사이를 흐르는 많은 물들을 모두 불로 핥으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만방에 선포하게 됩니다.
    
비를 내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던 엘리야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말의 도움을 받고 움직이는 아합 왕 앞에서 뛰어가며 엘리야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북이스라엘의 모습이 멀지 않았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앞에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도륙하였고 하나님의 표적인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비를 그들의 눈 앞에서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엘리야의 생각은 순진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합왕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죽였던 사실, 그리고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비가 내렸던 사실을 이세벨에게 알렸을 때 이세벨은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다는듯이 사신을 - 자객을 보낸 것이 아니라 - 보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엘리야에게 선언합니다. 엘리야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무서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에 남지 못하고 남유다 지방의 가장 남쪽인 브엘세바까지 한달음에 도망을 가게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진 그를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와 떡을 주고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 산, 하나님의 율법을 얻게 된 바로 그 산인 호렙산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러 가라고 명령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내며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듯이 엘리야는 광야를 사십 주, 사십 야 동안 걸어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동굴에 들어가 쉼을 취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1-14)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자신 앞에 서라고 명령하셨고 산 위에 선 엘리야 앞에 강맹한 바람이 불었으나 그 바람 가운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땅 전부를 흔들어버리는 지진이 있었으나 그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덮쳤으나 그 안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엘리야는 하나님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됩니다.
      
나약하고 나약한 선지자 엘리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을 하고 하나님 안에서 열심을 내었지만 그러나 자신에게 오는 이세벨의 살해 위협과, 북이스라엘 백성의 압박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 자체를 떠나버리고 하나님께 죽음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더 이상 세상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나님께 땡강을 부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엘리야에게 아직 죽음을 허락하시지 않은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세 명의 사람을 주십니다.
  
아람의 다음 왕 하사엘, 이스라엘의 다음 왕조의 시조인 예후, 그리고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이 세 명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지만 결국 엘리야는 오직 한 명 엘리사에게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아람 왕 하사엘, 이스라엘 왕 예후에게 - 예후에게는 직접 부은 것은 아니지만 - 기름을 붓습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야보다 엘리사가 더 믿음이 있었고 더 담대했으며 더 용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강대한 기적을 맛본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가뭄 그리고 하나님의 비를 내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며 우리보다 어쩌면 더 나약한 사람이었찌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순종하고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였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고 데려간 것입니다. 나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그였기에 말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왕상 1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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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왕상 18:21-24)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신이 있고 자신들만의 미래가 잇으며 자신들만의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러한 그들만의 것들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의 문제 모두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때 그들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절망감은 스스로를 절멸에 이르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오늘을 잡아라,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인 카르페디엠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금과옥조와 같은 격언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즐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이 없습니다. 단순히 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삶의 황폐하며 생활이 메마릅니다. 좋은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자극적인 것을 얻으려 하며 쾌락을 더 선호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만 가다가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갈 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리야 앞에 서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믿고 따랐던 풍요의 신 바알이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데 그 가뭄을 해갈시켜주는 신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비였고, 오로지 풍요였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수입해온 풍요의 신 바알은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려고 꼭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가 누구 편에 설 지 선택하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머뭇거렸던 이유는 그래도 풍요의 신 바알을 미워해도 다시 한 번이라고 그가 비를 내리기만 한다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 있다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알이 이긴다면 그리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명기의 복들, 즉 과거 모세가 말했던 풍요의 복들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략 육십 년의 세월동안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뭔가를 주지를 않았는데 갑자기 가뭄을 일으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았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바알에게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왕의 공포 정치로 인해서 삶이 무너져내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풍요의 신 바알을 따르려고 하는 그 북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으로 그들에게 비를 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자신의 길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때에 엘리야는 자신에게 호응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얼마나 바알이 풍요의 신이 헛된 신인지를 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사역자는 하나님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정말 각자가 뜻하는대로 가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뿌려야 하며 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해야만 합니다. 선량하지만 가난하고, 겸손하지만 유약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만족을 위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자기들의 이익 때문이었지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즉 왕의 권력과 백성들의 이익이 맞닿아져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은 버리고 풍요의 신 바알을 따랐던 것이며 우리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주님의 교회를 신경쓰지 않거나 이용하거나 버릴려고 하는 단점 투성이의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자는 사역해야 하며 기도해야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의 부족함이 있기에 사역자도 화를 내고 분노를 흘리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족한 사역자를 통해서 영악한 사람들을 끌어모으십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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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갈멜산에 선 엘리야는 자신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옆 즉 상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자신 옆에 서 있는 자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팔백 오십 명이며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대략 육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고 금송아지를 택했다가 이제는 바알을 택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정말로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버렸던 것입니다.
    
최대한으로 잡아서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바알을 밀었던 때를 유추해보자면 오므리 왕조의 창시자인 오므리의 12년 그리고 그리고 아합의 이십 사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이전 그 어떤 신들보다도 바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마치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가 그들의 종교를 정책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최소한 25백년 전인 바로 그 때이기에 우리와는 종교 생활을 하는 이유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대략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신이라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마저도 복을 주는 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에, 혹은 교회에 오는 것이 이득이 되기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할지라도 마음 속에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인격적으로 만나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뱃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패션처럼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젊은 사람들, 인맥 확보를 위해서 교회를 다니려고 하는 어른들까지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안에서 우상을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보다 사역자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고민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 때의 금송아지는 출애굽을 시켜준 그들의 영도자로서 만들어낸 신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더 따르려고 하는 의지를 가졌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한낱 금송아지로 바꿔버린 그들처럼 우리도 돈으로, 인간인 그 누군가로 하나님을 치환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해준 것이 없는데 왜 믿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갖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바라고 바알을 믿는 것처럼 재화나 물질이라고 그들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갈멜산에 모인 이유는 국왕이 소집해서 모이기도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스라엘에 가뭄이 생겨났는데 그 가뭄의 이유가 바로 엘리야 그리고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기에 그들이 모인 것뿐입니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왕상 18:22-24)
    
그들은 가뭄만 해갈이 된다면 바알 편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바로 그 신이 진정한 신이 아니냐라고 일갈했을 때 그들은 엘리야의 말에 찬성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릴 정도의 힘을 가진 신이라면 가뭄도 해갈시킬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지난 삼 년 동안 비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였기에 지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지 우연이라도 비가 한 방울이라도 왔다면 그들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경 생활의 풍요를 위해서 언제든지 금송아지든, 바알이든 여호와 하나님이든 자신들의 신을 바꿀 위인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우리에게 좀더 나은 대우를 해준다면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그 직장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 사역자들은 그러한 유혹을 받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 그러한 유혹을 받게 되고 그 유혹에 따라 자신들을 버리고 교회를 버리며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 자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있는 것 그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트로피인 것입니다. 갈멜산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직 엘리야 하나뿐입니다. 그러한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령 엘리야가 아니 여호와 하나님이 불을 내리고 비를 내린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을 사람들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믿고, 풍요로움을 꿈꾸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야가 비를 내린 다음에도 쫓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가이세벨이 그를 쫓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누구도 엘리야를 보호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였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여호와의 선지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엘리야는 자신을 버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함께하자라고 말입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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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장부터 16장까지 이스라엘 전체 역사에 대해서 숨가쁘게 서기관은 써내려갑니다. 누가 이 책을 지었는지. 완성했는지 - 하나님이 하셨지만 그 하나님의 계시를 영감으로 받아서 쓴 바로 그 사람은 알 수 없기에 - 한 명으로 확정짓기는 난망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흐름은 디셉 사람 엘리야가 드러나기 이전까지 숨가쁘게 달린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나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등극한 이후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나눠지고 각자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혹은 하나님을 벗어나서 자기 멋대로 움직였는지를 묵묵히 그러나 숨가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합 왕이 16장 가장 끝 즈음에 나타납니다. 오므리 왕조의 두 번째 왕이자 오므리 왕의 아들 그리고 두로왕 시돈의 딸인 이세벨의 남편인 아합 왕은 여로보암의 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본모습을 열왕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보여줍니다.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 신을 믿는 이세벨과 함께 북이스라엘 전체를 바알의 신당으로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진멸합니다. 더 이상 북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바알의 나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 때 디셉 사람 엘리야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열왕기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그리고 곧바로 엘리야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이곳 저곳으로 가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전체는 가뭄으로 기근이 생겨버렸고 아합 왕이 직접 나서서 엘리야를 찾아보기도 하였지만 엘리야는 온데간데 없었고 - 하나님이 숨기셨으므로 - 왕이 직접 물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살만한 세상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이세벨을 위시한 바알의 추종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진멸하려고 더욱 광분한 상태입니다.
    


왕궁 맡은 자 오바댜가 숨겨주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합 왕에게 있어 가뭄의 원인이자 기근의 근거인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로 들어선다는 것은 그리고 아합 왕 앞에 서 있는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합 왕 앞에 서라고 명령하십니다. 바로 죽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엘리야는 따릅니다.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17, 18)
      
세상의 권력자인 북이스라엘의 군왕인 아합 왕이 엘리야를 만나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한 아합 왕에게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기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령하셨기에 담대히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은 자신과 자신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에게 따라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선언합니다. 가뭄이 일어나게 된 것은 아합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들을 따랐음이라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아합 왕은 비가 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가뭄의 원인인 엘리야를 없이하기를 소망합니다. 그 갈등의 때에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 중 누가 신인지 결판을 내자고 갈멜 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아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당연히 가뭄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려오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적이고 아군은 한 명도 없는 바로 그곳에 갈멜산 꼭대기 한 쪽에 엘리야는 당당히 섰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단 두 장만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지를 보여줬으며 그리고 자신이 왜 가뭄을 일으켰는지 보여줬습니다. 엘리야 그는 척박하고 황폐하며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담대한 믿음과 능력을 허락하셨기에 그는 분명히 두렵고 떨렸을테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앞에서, 그리고 아합 왕 앞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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