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민 33:50-53)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이동하던 바로 그 광야는 척박하기 이를데 없었고 물이 없었으며 파종을 하기 힘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얻었으며 바위에서 물을 얻었고 메추라기떼를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 아무것도 없다고 한 바로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얻을 수 있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요단 동편과 서편을 아우르는 그 땅 - 실제로는 요단 동편 땅만을 의미하지만 이스라엘의 거주지가 동편 서편 모두에 퍼져 있게 되었으므로 - 은 비를 머금은 땅이기에 파종할 수 있으며 목축을 하기에도 좋았고 물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물이 없다고, 곡식이 없다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땅에는 그많은 풍요로움이 있기에 유혹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까워질 즈음에 브올의 아들 발람의 꾀로 인해서 바알브올을 섬기는 이방 여인들 즉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로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만사천 명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 단 하나였지만 첫 번째 맞이하는이방신의 유혹과 다른 나라 백성들의 접근에 그들은 무방비로 당했고 모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지없이 망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유혹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후 행보에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원전 1000년 경 가나안 땅에 머무는 많은 이방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요구하신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받은 것처럼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심판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 도구가 이스라엘 백성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꾀에 속아서 이방신을 섬겼던 것처럼 그들이 그대로 있으면 그들로 인해서 변질되고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연약한 백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상당히 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는 유혹에 상당히 취약합니다. 믿음이 견고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마저도 한순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타락하게 되며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풍요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굳이 믿지 않아도 우리는 삶 가운데서 많은 것을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만 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넘어질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은 광야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세상의 향락과 유혹에 빠지기가 오히려 덜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느껴질 때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을 때에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그리고 가진 것을 하나님과 상관없이 누리기 위해서 사람은 쉽게 타락하고 쉽게 떠나가버립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 하나하나를 기도로, 하나님께 구해야만 얻을 수 있었을 때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을 때는 당연하다는듯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우리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고 유혹에 걸려들게 되며 우리 스스로를 우리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하나님과 상관없이 쓰게 되어 결국 멸망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모세에게 예언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풍요 속에서 그렇게 타락해갈 것임으로 그렇게 망해갈 것임을 예언하셨고 이스라엘은 그대로 변해갔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광야 땅을 그 척박하고 힘든 곳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노정기를 가장 축복받은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다가갔던 때가 없었기에 말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1: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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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2,13,14)
      
모세도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그가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중보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완벽히 보여주지 못해서입니다. 자신의 혈기를 부리고 자신의 분노를 그들에게 표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완전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실수를 했던 왕자 요나단을 왕 사울은 감싸주지를 못했습니다. 백성이 요나단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왕 사울은 왕자 요나단을 죽여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 지도자라는 것은 그만큼 엄혹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곳입니다. 모세는 그러한 하나님의 잣대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모든 20세 이상의 홍해를 건넌 사람과 같이 그도 비스가산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허락한 시간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도 올리기 난망합니다. 예레미야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맞게 기도를 허락하시며 각 사람에 맞게 일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기도를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에스겔에게는 당신 앞을 막아서고,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당신의 진노를 이스라엘 가운데 쏟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지금 모세는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을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모세에게 허락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말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여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 또한 모세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그는 차지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즉 요단 동편 땅으로 건너갈 수 있지만 모세에게 허락된 시간은 정해져 있으며 모세에게 허락한 땅은 요단 서편 땅 그리고 비스가산까지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민 33:1-4)
        
그들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도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명령ㅇ르 거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올라서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들은 수많은 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엄혹한 하나님의 명령과 불평불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지도자로 설 수 있었고 중보자로 세워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의 영웅, 인간의 지도자는 한계가 있습니다. 광야 노정, 40년의 시간 동안 이뤄진 놀라운 능력과 복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룩하신 모든 것들은 또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실 것이며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는 사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 힘겨움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다.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모세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리고 모세처럼 그들을 끊임없는 인내로,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을 지킨 사람도 없지만 그도 인간이고 그도 떠나야만 하며 그도 결국은 먼지처럼 사라져야만 합니다. 인간은 덧없습니다. 인간의 대단함, 인간의 명예, 권력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위대하신 분이시고 인간은 목사님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독재자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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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지도자의 위치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지도자의 위치에서도 할 수 없는 것 또한 많이 있습니다. 첨예한 문제가 대립되는 경우 그 지도자보다도 더 강맹한 세력들간 사이에서 구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지도자로서도 할 만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 자신만 긍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만인 상황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지도자 휘하 모든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자 한 귀퉁이가 반기를 듭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의견을 채용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지도자를 압박합니다. 당연히 공동체의 다른 세력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지도자가 잠시 그 문제를 방관하게 되면 금세 문제는 확전이 되고 엄청난 갈등이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의견이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정도도 얻지 못하는 것이냐라고 항변을 하고 그 의견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서 공동체를 깨서는 안 된다고 저항을 합니다. 지도자는 이 때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자칫 기계적인 중립을 결단으로 내리게 되면 공동체는 백퍼센트 쪼개지게 됩니다.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민 32:28-4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적은 숫자의 무리들을 제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얼마 후면 죽음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즉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가 연합할 수 있도록 계책을 내는 것인데 일단 모세의 분노를 들은 요단 서편 땅에 거하기를 원하는 지파들이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 제안 자체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균열이 생겨버린 공동체, 요단 동편 땅으로 가야만 하는 지파들과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는 지파들 사이에서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후임이 되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 명령 자체가 조금은 이상합니다. 만약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 땅에서 이뤄질 여호와의 싸움을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함께하지 않으면 그들의 땅을 요단 동편 땅에 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이유는 요단 서편 땅에 거주하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도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허물을 가진 채로 - 우상을 섬기든, 여호와의 싸움을 포기하든 -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게 되면 여호수아서 끝자락에 나온 것처럼  전쟁을 해서라도 이스라엘에 강제로 편입시키라는 것입니다. 즉 땅의 크기가 늘어나고 늘어나지 않는 것보다도 요단 서편 땅에 거주하는 지파들과 요단 동편 땅에 거주하게될 지파들 모두가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경계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가 되면 그 다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갈등이 생기고 요단강으로 그들 서로가 경계를 그어버리게 되면 서로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지게 됩니다. 결국 요단 동편 땅에서 싸우던 요단 서편 땅의 지파들이 갈등이 생겨서 요단 서편 땅으로 가버리게 되면 그들은 아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떨어져버릴 가능성이 커버립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이스라엘은 갈라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갈등이 생겨서 서로 떨어지게 될 상황이 생겨버리면 요단 서편 땅에 있는 사람들을 힘으로라도 억지로 끌어들여서 요단 동편 땅으로 불러들여 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가 되라고 요구하라는 의도가 담긴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 아래서 신정 국가를 이뤄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지파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하나되는 공동체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큰 갈등 사항이라 할 수 있는 요단 서편 땅을 원하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동시에 나머지 지파들의 불만 사항들을 잠재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 아래의 하나되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요단 동편 땅과 요단 서편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도 분명히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쪽을 우리가 소유할 기업이 되게 하리이다(민 3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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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대가를 치른다라는 것은 이전에 없던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 지도자를 세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 중 일부 즉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견고한 성읍을 세우고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앞에 서서 그들과 함께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기 위해서 전력투구할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그 의견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오직 자신들이 편할 수 있는 자리만 선택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눕겠으니 너희들은 알아서하라는 식으로 일들을 처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세상 일이면 그들은 세상 속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며 그러한 일들이 여호와의 일들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요.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는 빼앗으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에서 한 달란트, 한 므나를 받은 종들이 심판을 당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주인과 맺은 언약을 그들스스로 해석하여 깨뜨려버리고 그에 따른 변명만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과 다르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언약을 세울 수 있는 중도자를 앞세우고 하나님께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대가를 치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 사안들을 이야기합니다.
    
분노를 내뱉었던 모세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사실 그들의 아이들만 그들의 처자들만 아무리 견고한 성읍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놓는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조건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병력은 요단 동편 땅에 있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형제들과의 싸움을 싸우러 대부분 같이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차지하고 싶습니다. 요단 동편 땅에서 우리의 처자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요단 서편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정복 작전에 우리도 참여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처자들을 주님께서 보호해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그들은 제안과 함께 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요청을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맹세대로 여호와의 싸움 즉 요단 서편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을 같이 수행하겠다면 그들이 원하는 요단 동편 땅을 그들의 땅으로 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형제가 안식할 때까지 그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요단 동편 땅의 안녕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땅인 야셀 땅과 길르앗 땅 즉 요단 동편 땅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대리자인 모세가 처음으로 인증한 것입니다.
      
길르앗과 야셀 땅은 대가를 치르는 땅입니다. 그들이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허락했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땅은 요단 서편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요단 동편 땅인 길르앗과 야셀 땅은그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땅이었고 그들이 머물기에 멋진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곳이 좋사오니 이곳을 주옵소서라고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공짜로 땅을 차지하려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길르앗과 야셀 땅을 차지하려던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캐치하여서 그것을 하겠다라고 그들의 조상들처럼 잘못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과 중보자 모세는 그들에게 길르앗과 야셀 땅, 요단 동편 땅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4-30)
    
하나님은 부지런히 우리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단지 하나님의 자녀로만 인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증인으로 우리를 다시 보내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속해서 수행해야만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포기하고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길르앗과 야셀 땅을 차지하려고 했던 요단 동편을 얻어냈던 지파들처럼 해야만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합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원래 행해야 하는 일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그들의 처자들을 견고한 성읍에 최소한 병력과 함께 놔두고 그들은 요단 서편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호와의 정복 전쟁은 그대로 치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는 것은 우리의 최선의 그것보다도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그 시간 때문에 혹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것도 포기함 없이 원하는 것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0: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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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민 32:1-5)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투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요단 동편을 평정해버렸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 땅에서 거처를 정하고 싶어합니다. 과거 광야에 있을 때에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그리고 버텨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목전에 이르러서는 그와 비슷한 땅이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아모리 인들이 이미 텃밭을 가꾸어 충분히 개간된 땅이라 할 수 있는 아모리인들의 땅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 자리에 멈춰서서 정착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굳이 요단강을 건너서 그곳에서 전쟁을 하기보다는 더 이상 전쟁없이 평온한 삶을 살기를바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협을 해야만 합니다. 그들의 수장인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너희는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너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그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기 힘들며 모세는 이미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기에 오히려 더 그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는 상태입니다.
        
앞의 목표를 위해서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 그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로서 함께 걸어가야 하며, 함께 헤치고 가야 하는데 그 공동체가 이뤄놓은 대가를 혼자 모두 차지하겠다고 하는 발상 그 자체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땅 즉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모리 왕 시혼, 바산 왕 옥, 그리고 미디안의 다섯 왕들을 모두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절멸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요단 동편 땅에 거처를 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 서편으로 군대가 같이 가서 대가를 치를 것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치를 대가는 단순히 요단 서편 땅이 안정을 취할 때까지 함께 싸우는 것 이상이 됩니다. 문제는 요단 동편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기에 그 땅은 요단 서편 땅보다도 더 많은 외침을 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모리 왕의 땅을 얻기 위해서 암몬 족속은 지속적으로 길르앗 지방을 침공했습니다.
    
요단 서편 땅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그곳 족속들을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기에 외침을 받았다면 요단 동편 땅은 하나님이 원래 정해주신 땅이 아니다보니 그곳을 넘보기 위해서 이방 족속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수밖에 없으며 강으로 가로막혀 있기에 요단 서편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그리 친밀하지 못하다는 단점마저 있어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므낫세의 입다처럼 자신들끼리 힘을 만들어서 외세에 대처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 모두를 하나님은 내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많은 재화들, 많은 이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모든 것들이 온전히 그 사람의 것, 그 단체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포함된 그 어떤 것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가를 치뤄야만 합니다.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얻은 땅을 자신들끼리만 차지하게 되었을 때 신의의 의무를 지기 위해서 자신들도 나머지 이스라엘이 거주할 땅을 온전히 차지하게 하기 위해서 같이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부분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의를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안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래 허락하신 땅이 아닌 요단 동편 땅에 거주하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들보다도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더 좋아해서 따라갔으므로 해서 그로 인한 불이익을 대가로 받아야만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목자들의 문제로 서로 갈라지려 했을 때 롯이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 땅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이 양들을 먹이기에 정말로 좋은 땅이었지만 그 땅을 선택하게 됨으로 인해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암직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안에 있는 유무형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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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삼상 30:18-25)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일전을 벌이기 바로 전에 가드왕 아기스의 신하로서 블레셋의 편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했던 다윗과 그 휘하 부장들은 다른 블레셋 지도자들에 의해서 전쟁에 임하는 것이 좌절됩니다. 바로 전쟁이 있던 그 날 다윗과 그 부하들이 그들의 본거지 성읍인 시글락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자신의 성읍이 불타 있으며 그들의 가족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도둑맞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허락하셨고 다윗은 그들의 것을 모두 탈취해간 아말렉 족속들을 따라가다가 브솔 시내에서 200명이 낙오되어 그들을 거기에 머무르게 하였고 나머지 400명으로 아말렉 족속을 따라가기에 이르러 그들을 모두 파하고 그들이 가지고 간 모든 것을 다시 돌려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00명과 함께 브솔 시내로 돌아와 그들을 맞이하는 200명의 낙오 병사들을 보게 됩니다.
    
낙오된 이들에게 가족만 돌려보내고 그들을 내쫓자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전리품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나누는 법을 다윗 시대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미혹케 한 미디안 족속의 다섯 왕을 죽이고 브올의 아들 발람을 죽인 다음 그곳에서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오게 됩니다. 사람들과 가축들 그리고 많은 패물들과 귀금속들을 가지고 오는 그들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모든 전리품의 반을 전쟁을 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눠줘라고 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눠준 이유는 다윗이 낙오한 200명의 군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준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가든 나가지 않든 모두 하나님의 하나된 백성입니다. 하나된 백성으로서 전쟁 속에서 얻어낸 전리품은 모두 함께 나눠야만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떠난 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된 이스라엘이라는 기치를 놓치지 않기를 바랐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전쟁을 나간 사람이나 전쟁을 나가지 않은 사람 모두 전리품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여호와의 거제로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고 또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막을 맡은 레위인에게 주라(민 31:25-30)
    
여기서 하나더 전쟁에 참여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가진 전리품 중에 오백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주게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은 전리품 중에 오십분의 일을 레위인에게 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에게 전리품을 나눠주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그들에게 양식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 때도 지금도 이러한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그러한 전통이 반 정도만 지켜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지금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담임 목회자나 혹은 일부 부교역자에게는 그들의 양식을 풍성하게 주지만 교회 안에서 일하는 많은 빛을 보지 못하는 담임 목회자나 일부 부교역자를 제외하는 사역자들에게는 제대로 그 처우를 좋게 대우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식의 위로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그들의 양식을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공금해주라고 다양한 율법을 통해서 명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버려두고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때에 그러한 일들이 있었고 말라기 때에도 마찬가지로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든 돈을 잘 못 버는 사람이든 최소한의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 공급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로 싸운 사람이 일만이천 명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최소 육십만, 최대 이백만이었습니다. 이 두 세력에게 반씩 전리품을 나누게 한 것은 이스라엘 군사로 싸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전리품을 주어 그들로 불평하지 않게 하였으며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양식이 될 수 있는 전리품을 주어 최소한의 재화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의 인원이 적었으므로 그들에게 오백분의 일을 레위인의 인원이 많으므로 그들에게 오십분의 일을 줌으로 해서 제사장과 레위인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급을 받는 존재들임을 다시 한 번 명시하였습니다. 그들이 최소한의 의식주가 채워줘야만이 하나님의 성막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지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은 손해보지 않겠다라는 결심을 내보이지 말고 교회를 섬기는 담임목회자부터 교역자들 그리고 행정 간사들까지 최소한의 임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느 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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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다 진영 밖에 나가서 영접하다가 모세가 군대의 지휘관 곧 싸움에서 돌아온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에게 노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들을 다 살려두었느냐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3-16)
        
이스라엘의 대적 미디안을 징벌하고, 절멸시키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승전보를 울리고 탈취한 것과 노략한 것 모두를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엘르아살이 그들의 탈취물을 보고 기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히려 이스라엘 군사들이 탈취해온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며 노하였습니다. 모세가 보기에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스라엘 안에 죄악들을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들여오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치라고, 멸망시키라고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스라엘 군사들은 모세를 통해서 듣게 된 하나님의 명령의 의도를 명확히 알아야 했고 그 의도대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한 자신들에게 도취된 체로 그곳에서 탈취할 수 있는 것과, 노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한 이후에 그들의 부모에게 찾아가 자랑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 쪽으로 유혹하던 미디안 여인들을 트로피로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24천 명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잊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사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지기 이전에 이 문제를 황급히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법궤를 부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치하였던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이스라엘을 우상 쪽으로 미혹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여인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중 남자들도 모두 죽이고 오직 미혼인 미디안 여성들만 들여오라고 명령을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스라엘에게는 고된 아픔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이후에 사무엘 사울 시대에 사울은 아말렉 족속을 모두 죽이고 그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고 하는 하나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같이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좋은 것들은 살려놓고 아각 왕까지 살려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보다 제사를 좋아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백성이 치부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인지라 우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왜곡되이 해석하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에 귀를 막고 있는 것 그 자체도 분명한 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명령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고 묵상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띄엄띄엄 읽어서도 안되며 기도를 건성건성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묵상하고 확인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 함부로 하나님 말씀을 건너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핑계를 대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 핑계를 대고 부모를 섬기지 않았던 유대인 랍비들의 고르반 전통과 일반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스스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기에 결국 그 쪽으로 완전히 빠져버리기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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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전쟁에 나갈 사람들을 무장시키고 미디안을 치러 보내어 여호와의 원수를 갚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전쟁에 보낼지니라 하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을 시킨지라(민 31:1-5)
        
발람과 발락 이야기는 민수기 즉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기의 끝자락에 있는 신비로운 에피소드입니다. 발람과 발락 이야기에서 그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도 중심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며 그들이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에서도 이스라엘이 중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야로 보여지는 이스라엘 전체 무리들에 대해서 묘사가 나올 뿐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람이 사람과 연결이 되는 것 그 자체는 분명히 선하고 나쁘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었을 때 그들은 당연히 다른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도움을 청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주의 깊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봐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하며 따라서 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축복하였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을 나락으로 빠뜨릴 계략을 꾸미게 됩니다.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바꿔치기 하려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했던 발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었던 미디안 백성들, 그리고 그의 뜻에 동조했던 미디안 왕들과 함께 바람은 최종적으로 멸망받고 말았던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수 있었던 발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하나님 곁으로 떠나가기 전에 미디안과의 일 즉 싯딤에서의 일을 결착지으려고 합니다. 신정국가 이스라엘에게 왕이신 하나님과 백성인 이스라엘 사이에 이간질을 하려고 했던 죄는 그 어떤 죄보다도 더 중하고 큽니다. 그렇기에 미디안의 모든 백성, 미디안의 모든 왕들 그리고 발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철저하게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손에 절멸시키려고 했으며 실제로 이스라엘은 24천명이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단 만이천 명의 병사로 미디안은 삭제당하고 맙니다. 바알브올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은죽게 되었고 그를 따라서 동조하였던 에위, 레겜, 수르, 후르, 레바, 즉 미디안의 다섯 왕들은 절멸되었으며 백성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양육하시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지 않고 좁은 문을 통해서 좁은 길을 가기보다는 넓은 문을 통해서 넓은 길을 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보다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브올의 아들 발람을 통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모세가 각 지파에 천 명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를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 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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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민 30:1, 2)
        
스파이더맨 트릴로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마블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전혀 다른 그 이전의 스파이더맨 영화로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어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된 마블 유니버스의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동력을 준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 파커의 말이 있는데 사실은 그의 잘못으로 죽게 된 그의 삼촌이 그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터 파커는 자신이 원해서 그 힘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연의 산물이었기에 그는 그 힘을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그는 너드였으며 왕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힘을 얻게 된 그는 자신을 왕따시키는 학교 친구들을 골탕먹이기도 하고 돈벌이를 위해서 밤에 사설 링에서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삼촌은 그를 설득하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큰 힘을 얻었다면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피터 파커는 그의 삼촌의 죽음 이후에 알게 됩니다. 자신이 한 행동, 자신이 만들어낸 일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신이 잘못 행동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부터 많은 사람들까지 많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 힘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힘을 얻게 되면 많은 것을 이룰 것이라고,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힘을 얻게 된다라는 것은 그만큼 가지고 있어야 하는 책무가 많을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이 지탄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이 향유할 수 있는 수많은 권리들, 권한들은 누리면서 그들이 해야만 하는 혹은 그들이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책무들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가진 자들이 가져야 하는 품격들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기에대중이 그들에게 혹독한 시선을 주게 됩니다. 많은 언론들은 기업가 혐오 주의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그러나 기업가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많은 책무를 가져야 한다라는 사실들을 그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들은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기원전 1500년 전에 있었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서원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서원을 할 때 조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을 했다가 그것을 이루지 않는 사람에게 죄없다 하지 않으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외 사항을 말하십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서원을 했다가 그의 아버지가 알아서 그 서원을 백지화 시키면 하나님께서 서원을 했던 여성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또한 결혼을 한 여성이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서원을 했다가 남편이 그것을 알고 백지화 시키면 서원을 했던 여성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특권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화를 이해하시고 인정하셨던 하나님께서 여성들의 권한 자체가 상당히 제약되어 있기에 그들의 의무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명의 성인이라고 한다면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투표권이 있으며 스스로의 신상과 관련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금의 우리들이라고 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서원을 했다고 한다면 그 서원을 이뤄야만 합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가 백지화시킨다고 해서 그들의 죄가 사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권한과 권리가 있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책무와 의무가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권리와 권한만 달라고 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발상은 없다라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권리와 권한을 달라고 하려면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무를 하겠다는 결심이 스스로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는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인정받고 싶다면 우리는 그에 따르는 책무와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소속되어 있으려면 백성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우리는 한 명의 오롯한 단독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민 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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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삼상 12:1-4)
      
사무엘의 머리는 이미 희어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울 왕이 주어졌습니다. 사무엘은 지도자 즉 사사의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 연약한 점, 죄를 지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러한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러한 식의 질문은 원래는 대부분 요식 행위에 불과합니다.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은퇴하는 마당에, 그에게 죄가 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챕터 후반부에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과 하나님 앞에서 깨끗했는지를 자신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께서 증명하셨습니다. 비록 엘리와 마찬가지로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었다고 하는하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무엘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사무엘에게 당신의 뜻을 여전히 베푸시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지는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사무엘에게 함부로 할 수가없었습니다.
    
사울 왕이 암몬 왕 나하스를 섬멸하고 암몬 족속을 절멸시킨 이후에 즉 사울 왕의 위세가 강해진 다음에도 사무엘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중요 지도자 중 하나였으며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 즉 선지자로서 위치해 있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사무엘과 같은 선지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왕을 처음으로 세웠으며 그 이전에는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활동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청렴함과 순전함마저 있다보니 그를 위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어떤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23-31)

      
지금 우리에게도 수많은 지도자가 있으며 사역자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곧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가 잘 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사람들을 케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국민들을, 그리고 양들을 먹어버리는 상황이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나 원했던 인간의 왕들, 인간의 고귀한 대신들은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을 감시하고 그들에게 정의와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말해야 하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그들과 짝 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는 그들을 속이려고 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들은 매번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든 죄를 짓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내 맘대로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절망을 이야기하고, 십자가를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좁고 협착한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세상 속에서 많은 지도자들 특히 사역자들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살피고 그들에게 좋은 말, 그들의 입맛에 딱 맞는 말씀만 전합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기득권에 붙으라고, 약한 자와 연약한 자를 돌아보기보다는 성공 신학, 그 성공이 만들어낸 수많은 희생과 상관없는 그러한 성공 신학만을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 14)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니까, 하나님보다 세상 사람들 아니 교회에 오지만 믿음은 있지 않고 돈만 많은 사람들, 혹은 위로만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 자신의 죄 문제는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복만을 원하는 사람들, 죄된 삶은 청산하지 않으며 매일 매번 자신 안에 어떤 복권이 있는지, 마치 복을 로또처럼 사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하려고 하는 사역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오히려 넓은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 길로 가지 말라고 그 앞을 막아서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에 대해서 명확하게 그리고 엄혹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에게 위로의 말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용서해주신다고, 그러나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고 엄히 말합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에서는 내려왔다 하더라도 사무엘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명을 지키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삼상 1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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