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공의, 정의, 그리고 선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그들이 정의라고 믿는 것에 따라서 성경을 찾다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거기에 있을 경우 그 대답을 바로 주제 성경 말씀으로 정해놓고 그 말씀에 따라서 세상을 재단하고 심판하며 듣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재단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들의 동기만큼은 이해가 되지만 그들의 과정이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이해받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진실이나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그 정의를 전하기 위해서 진실이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동기는 이해받을만 하지만 그들의 과정은 이해받을만 하지 못하며 오히려 철저히 질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이 문제가 되면 그들의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그들의 결과물을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MBC 뉴스에서 문제가 되는 기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무술년 즉 신년이 되어서 최대 화두가 될 수 있는 개헌에 대한 생각을 시민들에게 듣는다는 그들의 기사인데 문제는 시민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뭐 그리 번거로웠는지 인턴 기자로 있었던 - 12월 말까지 있었던 - 학생을 그대로 섭외하였고 그것이 기사를 보던 사람들에게 걸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 문제는 당연히 비난의 근거, 질타의 이유가 되었는데 결국 그들은 시민의 의견을 왜곡했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사들을 만드는 언론들의 왜곡된 여론을 조성하는 행동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위의 내용들이 있는 기사를 잘 살펴보면 나름 여러 방면의 의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학생들을 섭외한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을 잘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출이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언론은 말할 것입니다. 어차피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들이 잘 아는 사람들 즉 지인을 중심으로 해서 의견을 청취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은 자신들의 의견에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왜곡된 인터뷰이를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말해주는 그 내용들을 그대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시청자에게 느끼게끔 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동기의 순수함을 그들의 과정으로 뭉개뜨린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언론들의 행동이 이해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그것을 설교하거나 전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당면한 현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그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근거가 되는 말씀 혹은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에 만약 우리가 원래 그 말씀이 이뤄진 배경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고서 자신이 원하는 설교를 위해서 무작정 이용을 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위의 MBC 기자들이 인터뷰어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한 것과 별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명령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은 성도들 혹은 청중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즉 설교자와 사역자를 포함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어떠한 상황 가운데 그 말씀이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하고 먼저 생각하며 먼저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로 그것을 가감없이 성도들에게, 청중들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먼저 정하고 성경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경을 찾고 그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전해야 하며 설령 성경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전하는 설교자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거나 건너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를 하는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설교를 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성경을 자기 맘대로 해석하는 미혹에 빠지기 정말로 쉽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은 성경이 뭐라 말씀하시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며 내 의견에 맞는 말씀을 골라 먹는 그러한 행동들을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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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 9:1, 2)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그러나 그 안에서 고난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며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구원의 손길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고난 당하고 고초를 당한 사람들이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죄를 지었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었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가 버린 것입니다.
      
남유다의 북쪽 갈릴리 땅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북이스라엘의 영토였으나 앗시리아 제국이 와서 그곳을 모두 훼파하였고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들은 사마리아 이상으로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땅과 다르게 그곳은 황폐하게 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미래에 오실 메시아를 선포하셨습니다. 바로 그곳,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갈릴리 땅에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자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당신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모든 악한 마귀 사탄은 물러가고 세상의 권세들 또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성자 하나님이시자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황폐해진 땅, 가장 무너진 땅 바로 그곳에 임하신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 7)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대체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땅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백성 또한 하나님을 버리는 데 또 한 번 일조합니다.
    
앗시리아 제국에 정복을 당할 때도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이 아닌 가치 없는 것을 더 섬기려고 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모습은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땅이나 갈릴리 땅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사 9:3, 4)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오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약속해주시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친히 내보이십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마치 여호와와 아세라 상을 부부의 연으로 맺어놓아우상을 새롭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돈을 같이 섬기거나 하나님과 사탄을 같이 섬기는 패악한 짓을 벌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문제이고 우리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갈릴리 땅에 회복이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땅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만큼 깨끗한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구원 받을만한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명확히 알고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라고 스스로 자화자찬하지 말고 오히려 에스라처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내려놓아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중 세리의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것입니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스 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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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와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유익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렘 18:18-20)
          
예레미야 18장의 전체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마음이 드시지 않는 당신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그리고 토기장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 자신이 지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토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서버리고 그 흙으로 새로운 토기를 만들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라 일컫는 이스라엘 백성을 흩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없으며 들으려고도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예레미야와같은 당신의 선지자들을 지속적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이 돌이키기를 요청하십니다. 돌이키면 기억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이스라엘 백성,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없으며 여호와의 명령을 행할 마음이 없는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선포, 심판의 말씀을 말하는 예레미야를 무시하려 하여 그의 말이 아무 가치 없게 하거나 선지자를 해하려고 하는 행동까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죄악된 백성이며 목이 곧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생명을 위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말씀이 이곳 저곳에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TV를 틀어도, 인터넷을 열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피조물인 토기를 자신의 뜻대로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당신의 피조물에게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요청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정해진 때가 올 때까지 그분의 요청이 이어질 것이지만 정해진 때가 지나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대적으로 인해서 흩어지게 되듯이 지금도 우리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라 일컫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많은 재화, 자산 속에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해진 때, 하나님의 요청이 성과없이 끝이 나고 그 이후에 있게 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선포가 이루어지게 될 때까지 우리는 귀를 막아버리고 행동할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마 23:29-31)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서 근거없는 자신감 즉 근자감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그 어떠한 거리낌도 하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우리는 지금도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말씀만 취사선택하고 우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말씀만 확인하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육체적인 생명을 빼앗는 것만이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선포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 그 말씀을 아무 가치 없게 만드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육체의 위해만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님께서 말하라 해서 하게 된 선포의 말씀을 무시하는 전략으로 가치없게 만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악을 하나님께 고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가서 그 말씀을 달게 들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귀에 달고 단 말씀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쓰디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스스로 겸비하고 한 걸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고 고치고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가 토기를 보듯이 당신의 피조물이자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백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마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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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렘 18:1-4)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의 집으로 가라 명령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게 됩니다. 토기장이는 녹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자신이 원하는대로 토기를 만들고 만약에 자신의 마음에 그 토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토기를 부수고 다시 그 재료인 진흙으로 새로운 토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예레미야가 토기장의의 직무를 살펴보고 있었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비유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비유를 풀어 말씀하셨던 것처럼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미련하기도 하고 전혀 듣지도 않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토기장이의 일은 그 당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었던 삶의 모습이었으며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5-10)
      
그들이 알고 있는 토기장이의 직무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기장이는 하나님이고 그 앞의 토기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그 죄에서 떠나 그 자신을 하나님 눈에 좋게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토기를 부수겠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토기는 그 만든 존재 토기장이가 주인이기에 토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주인인 토기장이는 그 토기를 부수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만든 존재인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 이스라엘 백성을 흩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패악과 우상 숭배에 대해서 예레미야 전반부 그리고 후반부 말씀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볼 수가 없었으며 그들을 자신의 것으로 계속 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를 통해서 토기장이 비유를 베풀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요구하고 계십니다.
          
"내 눈에 싫어버리지 않도록 너의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해라."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모습이 되거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들으며 믿고 싶은대로 믿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토기장이가 토기를 부수어 흙으로 만드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흩으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렘 18:11, 12)
      
이스라엘 백성의 주인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죄에서 떠나고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지 않는다면 그들을 싫어 버리시겠다고, 흩어버리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11, 12절 말씀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진행단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라는 말은 마치 심판의 나팔이 입에 거의 닿았다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 기로가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에서 지속적으로하나님의 심판만이 전해졌다라고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요청되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그것도 온몸과 온 맘으로 하는 전심 전신으로 하는 회개를 요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회개, 돌아오라는 요청은 철저히 거절되었고 거부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그들에게 에정되었던 심판은 결국 실행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심판이 없다라고 이스라엘을 호도하였고 주권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철저히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인지, 토기장이가 토기의 주인이듯이 우리의 주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한다면, 우리는 고아나 다름이 없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의 구주, 나의 주, 나의 창조자로 고백하고 선포할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하나님의 자녀로 인증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자녀이며, 당신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매일 변화되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선포를 거부하였고 그들의 죄를 따라가다가 철저히 멸망되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신의 토기를 싫어버려 부수어버리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히 거부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거부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할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율법을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스스로를 깨끗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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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1-10)
        
40년의 광야 생활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한의 가데스바네아를 거쳐서 에돔과 모압 땅을 둘러서 가다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그 땅을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기로 확정하고 모압 땅 저편 요단강변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떠나게 되는 모세의 마지막 말들 즉 율법의 유언들을 듣기 위해서 그 자리에 모두 모여 앉아 모세의 강연을 듣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는 므리바 물 사건으로 인해서 아론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할 뻔 했던 수 많은 시기 동안 무릎을 꿇으며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강독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된 길을 가면 그들을 징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생의 채찍과 막대기로 징치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대리자였던 모세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끊임없이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바로 이전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로 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강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계명부터 시작한 모세의 강독은 들으라 이스라엘이라는 말로 지금 이스라엘 나라의 사람들에게까지 그리고 수많은 디아스포라 유태 민족의 가슴에 박히는 그 율법을 강독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상징이 다윗의 별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나라의 시조가 아브라함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자가 바로 모세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전하라 명령하신 율법의 강독을 거의 마치게 되었을 때 마지막이나 다름이 없는 바로 그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명령을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변의 민족들을 물리치게 되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서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선포하라고 말입니다.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신 27:11-14)
    
모세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빌어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그 사이에서 가나안 전 지방에 들리도록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하라고 복과 저주를 선언하라고 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가나안 민족들 그리고 이방의 모든 민족들에게도 법은 있었을 것이며 그들이 믿는 신 또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신공양을하기도 하고 목석의 신들 즉 죽어 있는 신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생소한 여호와 하나님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 이방 민족까지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방 민족에게 선포하면서 마찬가지로 선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음에 새겨야 하기 때문에 선언하고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선포하실 때에 에발산에 하나님의 말씀의 석비를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말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혹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창피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백성에게 선포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주님을 전하라고 주님의 교회를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나라를 주님을 전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1-17)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때에는 주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주님께 매달리지만 조금이라도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잊어버려진 하나님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또 자신이 위험하게 되면 다시 하나님을 찾으려고 돌아옵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다시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이웃에게 예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느냐고, 창피해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담대할 수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하나님은 내가 높은 부할 때에도 내가 가난할 때에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개인도 부할 때든 가난할 때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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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민 33:50-53)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이동하던 바로 그 광야는 척박하기 이를데 없었고 물이 없었으며 파종을 하기 힘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얻었으며 바위에서 물을 얻었고 메추라기떼를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척박한 땅, 아무것도 없다고 한 바로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얻을 수 있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요단 동편과 서편을 아우르는 그 땅 - 실제로는 요단 동편 땅만을 의미하지만 이스라엘의 거주지가 동편 서편 모두에 퍼져 있게 되었으므로 - 은 비를 머금은 땅이기에 파종할 수 있으며 목축을 하기에도 좋았고 물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물이 없다고, 곡식이 없다고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땅에는 그많은 풍요로움이 있기에 유혹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까워질 즈음에 브올의 아들 발람의 꾀로 인해서 바알브올을 섬기는 이방 여인들 즉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로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만사천 명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 단 하나였지만 첫 번째 맞이하는이방신의 유혹과 다른 나라 백성들의 접근에 그들은 무방비로 당했고 모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지없이 망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유혹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후 행보에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원전 1000년 경 가나안 땅에 머무는 많은 이방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요구하신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멸망받은 것처럼 그들도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심판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 도구가 이스라엘 백성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브올의 아들 발람의 꾀에 속아서 이방신을 섬겼던 것처럼 그들이 그대로 있으면 그들로 인해서 변질되고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연약한 백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상당히 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는 유혹에 상당히 취약합니다. 믿음이 견고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마저도 한순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타락하게 되며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을 수밖에 없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풍요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굳이 믿지 않아도 우리는 삶 가운데서 많은 것을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만 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넘어질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은 광야 시대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세상의 향락과 유혹에 빠지기가 오히려 덜 쉽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느껴질 때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을 때에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그리고 가진 것을 하나님과 상관없이 누리기 위해서 사람은 쉽게 타락하고 쉽게 떠나가버립니다. 아무것도 없었을 때 하나하나를 기도로, 하나님께 구해야만 얻을 수 있었을 때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을 때는 당연하다는듯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우리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고 유혹에 걸려들게 되며 우리 스스로를 우리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하나님과 상관없이 쓰게 되어 결국 멸망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모세에게 예언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풍요 속에서 그렇게 타락해갈 것임으로 그렇게 망해갈 것임을 예언하셨고 이스라엘은 그대로 변해갔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광야 땅을 그 척박하고 힘든 곳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노정기를 가장 축복받은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다가갔던 때가 없었기에 말입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1: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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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2,13,14)
      
모세도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그가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중보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영화로움을 완벽히 보여주지 못해서입니다. 자신의 혈기를 부리고 자신의 분노를 그들에게 표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그리고 사람 앞에서도 완전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합니다. 단 한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실수를 했던 왕자 요나단을 왕 사울은 감싸주지를 못했습니다. 백성이 요나단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왕 사울은 왕자 요나단을 죽여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 지도자라는 것은 그만큼 엄혹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곳입니다. 모세는 그러한 하나님의 잣대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모든 20세 이상의 홍해를 건넌 사람과 같이 그도 비스가산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허락한 시간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기도도 올리기 난망합니다. 예레미야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맞게 기도를 허락하시며 각 사람에 맞게 일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기도를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에스겔에게는 당신 앞을 막아서고,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당신의 진노를 이스라엘 가운데 쏟으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지금 모세는 마지막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마지막을 이야기해야만 합니다. 모세에게 허락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말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여정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 또한 모세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그는 차지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즉 요단 동편 땅으로 건너갈 수 있지만 모세에게 허락된 시간은 정해져 있으며 모세에게 허락한 땅은 요단 서편 땅 그리고 비스가산까지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인도로 대오를 갖추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행진한 대로의 노정은 이러하니라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민 33:1-4)
        
그들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도 하나님을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명령ㅇ르 거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올라서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들은 수많은 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엄혹한 하나님의 명령과 불평불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지도자로 설 수 있었고 중보자로 세워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의 영웅, 인간의 지도자는 한계가 있습니다. 광야 노정, 40년의 시간 동안 이뤄진 놀라운 능력과 복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룩하신 모든 것들은 또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실 것이며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는 사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사용함에 있어서 힘겨움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다.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모세만한 사람도 없지만 그리고 모세처럼 그들을 끊임없는 인내로, 하나님 앞에서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을 지킨 사람도 없지만 그도 인간이고 그도 떠나야만 하며 그도 결국은 먼지처럼 사라져야만 합니다. 인간은 덧없습니다. 인간의 대단함, 인간의 명예, 권력이 아무리 높다한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시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위대하신 분이시고 인간은 목사님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독재자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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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지도자의 위치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지도자의 위치에서도 할 수 없는 것 또한 많이 있습니다. 첨예한 문제가 대립되는 경우 그 지도자보다도 더 강맹한 세력들간 사이에서 구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지도자로서도 할 만은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 자신만 긍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만인 상황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지도자 휘하 모든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칙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자 한 귀퉁이가 반기를 듭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의견을 채용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지도자를 압박합니다. 당연히 공동체의 다른 세력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지도자가 잠시 그 문제를 방관하게 되면 금세 문제는 확전이 되고 엄청난 갈등이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의견이 있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정도도 얻지 못하는 것이냐라고 항변을 하고 그 의견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서 공동체를 깨서는 안 된다고 저항을 합니다. 지도자는 이 때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자칫 기계적인 중립을 결단으로 내리게 되면 공동체는 백퍼센트 쪼개지게 됩니다.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민 32:28-4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적은 숫자의 무리들을 제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모세는 얼마 후면 죽음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즉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가 연합할 수 있도록 계책을 내는 것인데 일단 모세의 분노를 들은 요단 서편 땅에 거하기를 원하는 지파들이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 제안 자체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균열이 생겨버린 공동체, 요단 동편 땅으로 가야만 하는 지파들과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는 지파들 사이에서 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후임이 되는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 명령 자체가 조금은 이상합니다. 만약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 땅에서 이뤄질 여호와의 싸움을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함께하지 않으면 그들의 땅을 요단 동편 땅에 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이유는 요단 서편 땅에 거주하는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도 모두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허물을 가진 채로 - 우상을 섬기든, 여호와의 싸움을 포기하든 -  요단 서편 땅에 머물기를 원하게 되면 여호수아서 끝자락에 나온 것처럼  전쟁을 해서라도 이스라엘에 강제로 편입시키라는 것입니다. 즉 땅의 크기가 늘어나고 늘어나지 않는 것보다도 요단 서편 땅에 거주하는 지파들과 요단 동편 땅에 거주하게될 지파들 모두가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단강을 경계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가 되면 그 다음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갈등이 생기고 요단강으로 그들 서로가 경계를 그어버리게 되면 서로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지게 됩니다. 결국 요단 동편 땅에서 싸우던 요단 서편 땅의 지파들이 갈등이 생겨서 요단 서편 땅으로 가버리게 되면 그들은 아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떨어져버릴 가능성이 커버립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이스라엘은 갈라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갈등이 생겨서 서로 떨어지게 될 상황이 생겨버리면 요단 서편 땅에 있는 사람들을 힘으로라도 억지로 끌어들여서 요단 동편 땅으로 불러들여 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가 되라고 요구하라는 의도가 담긴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 아래서 신정 국가를 이뤄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지파 체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하나되는 공동체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가장 큰 갈등 사항이라 할 수 있는 요단 서편 땅을 원하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동시에 나머지 지파들의 불만 사항들을 잠재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 아래의 하나되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결단이 없었다면 요단 동편 땅과 요단 서편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에도 분명히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쪽을 우리가 소유할 기업이 되게 하리이다(민 3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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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대가를 치른다라는 것은 이전에 없던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스스로를 위해서 지도자를 세우고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 중 일부 즉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견고한 성읍을 세우고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앞에 서서 그들과 함께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기 위해서 전력투구할 것을 말합니다.
    
새로운 의견을 제시할 때에는 그 의견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오직 자신들이 편할 수 있는 자리만 선택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눕겠으니 너희들은 알아서하라는 식으로 일들을 처리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는데 그러한 일들이 세상 일이면 그들은 세상 속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며 그러한 일들이 여호와의 일들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요.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는 빼앗으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에서 한 달란트, 한 므나를 받은 종들이 심판을 당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그들의 주인과 맺은 언약을 그들스스로 해석하여 깨뜨려버리고 그에 따른 변명만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과 다르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언약을 세울 수 있는 중도자를 앞세우고 하나님께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대가를 치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한 사안들을 이야기합니다.
    
분노를 내뱉었던 모세마저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사실 그들의 아이들만 그들의 처자들만 아무리 견고한 성읍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놓는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조건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병력은 요단 동편 땅에 있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형제들과의 싸움을 싸우러 대부분 같이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차지하고 싶습니다. 요단 동편 땅에서 우리의 처자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요단 서편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정복 작전에 우리도 참여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처자들을 주님께서 보호해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그들은 제안과 함께 드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요청을 모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맹세대로 여호와의 싸움 즉 요단 서편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을 같이 수행하겠다면 그들이 원하는 요단 동편 땅을 그들의 땅으로 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형제가 안식할 때까지 그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요단 동편 땅의 안녕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땅인 야셀 땅과 길르앗 땅 즉 요단 동편 땅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대리자인 모세가 처음으로 인증한 것입니다.
      
길르앗과 야셀 땅은 대가를 치르는 땅입니다. 그들이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허락했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땅은 요단 서편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요단 동편 땅인 길르앗과 야셀 땅은그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땅이었고 그들이 머물기에 멋진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곳이 좋사오니 이곳을 주옵소서라고 요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싸움을 싸우지 않고 공짜로 땅을 차지하려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길르앗과 야셀 땅을 차지하려던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캐치하여서 그것을 하겠다라고 그들의 조상들처럼 잘못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과 중보자 모세는 그들에게 길르앗과 야셀 땅, 요단 동편 땅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4-30)
    
하나님은 부지런히 우리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단지 하나님의 자녀로만 인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증인으로 우리를 다시 보내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속해서 수행해야만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포기하고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길르앗과 야셀 땅을 차지하려고 했던 요단 동편을 얻어냈던 지파들처럼 해야만 합니다.
      


최소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합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원래 행해야 하는 일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그들의 처자들을 견고한 성읍에 최소한 병력과 함께 놔두고 그들은 요단 서편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호와의 정복 전쟁은 그대로 치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는 것은 우리의 최선의 그것보다도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그 시간 때문에 혹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것도 포기함 없이 원하는 것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0: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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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민 32:1-5)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투로 인해서 최종적으로 요단 동편을 평정해버렸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 땅에서 거처를 정하고 싶어합니다. 과거 광야에 있을 때에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그리고 버텨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목전에 이르러서는 그와 비슷한 땅이라 할 수 있는 그리고 아모리 인들이 이미 텃밭을 가꾸어 충분히 개간된 땅이라 할 수 있는 아모리인들의 땅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 자리에 멈춰서서 정착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굳이 요단강을 건너서 그곳에서 전쟁을 하기보다는 더 이상 전쟁없이 평온한 삶을 살기를바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협을 해야만 합니다. 그들의 수장인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너희는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너희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멸망할 것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그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기 힘들며 모세는 이미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기에 오히려 더 그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는 상태입니다.
        
앞의 목표를 위해서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 그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로서 함께 걸어가야 하며, 함께 헤치고 가야 하는데 그 공동체가 이뤄놓은 대가를 혼자 모두 차지하겠다고 하는 발상 그 자체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 땅 즉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모리 왕 시혼, 바산 왕 옥, 그리고 미디안의 다섯 왕들을 모두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절멸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요단 동편 땅에 거처를 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 서편으로 군대가 같이 가서 대가를 치를 것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치를 대가는 단순히 요단 서편 땅이 안정을 취할 때까지 함께 싸우는 것 이상이 됩니다. 문제는 요단 동편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기에 그 땅은 요단 서편 땅보다도 더 많은 외침을 당할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모리 왕의 땅을 얻기 위해서 암몬 족속은 지속적으로 길르앗 지방을 침공했습니다.
    
요단 서편 땅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그곳 족속들을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기에 외침을 받았다면 요단 동편 땅은 하나님이 원래 정해주신 땅이 아니다보니 그곳을 넘보기 위해서 이방 족속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수밖에 없으며 강으로 가로막혀 있기에 요단 서편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그리 친밀하지 못하다는 단점마저 있어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므낫세의 입다처럼 자신들끼리 힘을 만들어서 외세에 대처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 모두를 하나님은 내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많은 재화들, 많은 이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모든 것들이 온전히 그 사람의 것, 그 단체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이 포함된 그 어떤 것을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가를 치뤄야만 합니다.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얻은 땅을 자신들끼리만 차지하게 되었을 때 신의의 의무를 지기 위해서 자신들도 나머지 이스라엘이 거주할 땅을 온전히 차지하게 하기 위해서 같이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이 부분은 그리 나쁘지 않은 부분입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의를 지키기만 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안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래 허락하신 땅이 아닌 요단 동편 땅에 거주하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것들보다도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더 좋아해서 따라갔으므로 해서 그로 인한 불이익을 대가로 받아야만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목자들의 문제로 서로 갈라지려 했을 때 롯이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 땅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이 양들을 먹이기에 정말로 좋은 땅이었지만 그 땅을 선택하게 됨으로 인해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암직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안에 있는 유무형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민 32: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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