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and Context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삼상 9: 25-27)
      
어린이 성경학교 때부터 대예배까지 모든 예배에서 다윗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많이 다뤄집니다. 다윗은 대왕이라고 불려졌던 히브리 민족의 두 번째 왕이며 수없이 많은 영웅 서사시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았던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해서 사람들은 더 많이 알기를 원하고 그에 대해서 더 궁금해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만큼 그의 대적자 중 하나였던 사울 왕에 대해서는 대부분 왜곡되이 말하거나 적어도 그의 이야기를 축소해서 말합니다. 그를 지금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생각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히브리 민족의 왕이었다라는 사실, 다윗보다 먼저 왕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지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도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기에 이스라엘에 왕을 두고 싶지 않았던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스라엘에 왕을 두고 싶다면 꼭 이 사람으로 해라라는 식으로 사울 왕을 선택한 것이라는 것 즉 그만큼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인정하셨다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다윗 왕 이전의 사울 왕과 사무엘 이야기, 그리고 사울 왕과 하나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편견없이 성경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귀들을 찾으러 사환들과 베냐민 땅을 떠돌아다니던 사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견자에게 찾아가 나귀들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하나님의 선견자 사무엘은 하나님께 싸인을 받습니다. 당신께서 택하신 왕의 재목이 사무엘을 만나러 온다는 바로 그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결국 사울과 사환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준비해놓은 자리에 같이 불러들여 그들을 대우합니다.
       
아시다시피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운다라는 것 그 자체를 그리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울과 대화하는 것에, 사울에게 기름 붓는 것에 그리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역시나 사울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이기에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했고 그에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기를 원하셨다면 자신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대접하기를 마친 사무엘은 자신과 사무엘이 거처하고 있던 집 지붕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 얼마나 대화를 이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 이후에 그 다음날 잠에서 깬 사울에게 사무엘은 거리낌 없이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끄시는대로 행하라고 권고합니다. 물론 사무엘은 사울이 어떠한 사람이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기에 기름을 부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과 사울의 대화는 의미심장합니다. 그 대화 이전에 사무엘은 사울을 예의를 다합니다. 사울의 집과 사울이 이스라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울이 하나님이 택한 왕이라는 사실을 사무엘이 인지한 것이지만 둘의 대화가 마쳐진 이후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사울이 어떠한 사람인지 어느 정도 파악을 한 것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후에 왕을 뽑는 이스라엘의 모임 속에서 사울이 어떠한 행보를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 사무엘은 적어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여 년 후에 사울과 사무엘은 완벽히 갈라지지만 그러나 그 갈라질 때에도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힘들어 하고 울적해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벗과의 이별을 하는 것처럼말입니다. 새로운 왕을 뽑아야 한다고 이새의 집으로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부 의사를 보이기도 합니다. 사울에게 죽을까봐라고 말하지만 반 정도는 그 이유가 맞는 것 같고 반 정도는 가기 싫다라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마저 추측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삼상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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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삼상 9:3, 4)
                   
청년 사울, 바울이 아닌 사울왕의 청년 시기 때의 그는 후술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겸손하기도 하였고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는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귀들을 잃어버리자 순종하는 아들인 사울에게 사환 하나를 데리고 나귀들을 찾으려고 명령을 하게 됩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고 만약 사울이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아버지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그러한 명령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스의 아들 사울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에브라임 산지를 수색하고,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고 그리고 사알림 땅으로 다녀보았으나 결국 그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도 다녀 보았으나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사울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데 그 포기하는 이유가 아버지가 나귀는 고사하고 자신들 때문에 걱정하실까봐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핸드폰도 없었고 유선 전화도 없었기에 한 번 집을 나가게 되면 전령을 보내지 않고는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도, 소식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삼상 9:5-8)
    
사울이 들고 있던 돈은 이미 떨어졌고 아버지 기스가 자신과 사환을 걱정하실 것을 우려해서 나귀를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하지만 사환은 그러한 사울을 불러세웁니다. 그들이 있는 땅 근처의 성읍으로 들어가 그곳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귀의 소재지를 알아보자라고 권유를 합니다. 그러한 그의 권유에 현실적인 대답을 사울은 합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 사환이 가진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드릴 수 없기에 힘들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사울에게 사환은 자신에게 드릴 은 사분의 일 세겔이 있으니 가보자고 할 때에 사울은 사환의 말에 동의를 표시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찾아가기 위해서 발길을 돌립니다. 여기서 사울의 성격 세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귀를 찾으라고 하는 명령에 순종하고 돈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끝까지 찾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사환의 권유에 윗사람으로서의 권위로 짓누르지 않으려고 하고 그의 말이 옳다면 그것을 따르려고 한 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믿음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에게도, 아버지 기스에게도, 아랫 사람인 사환에게도 신뢰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삼상 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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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 9:1, 2)
    
신약성경과 다르게 구약성경에서 사람을 소개할 때 많이 쓰는 기법이 두 가지 정도 있는데 하나는 그 사람의 생김새를 묘사함으로서 알려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사람이 어떠한 지파인지, 누구의 가족이며, 누구의 아들인지를 통해서 소개하는 방법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할 때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을 통해서 예수님의 계보를 설명하는 방식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디서 연원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면 예수님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는 대부분의 등장 인물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예수님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얼굴을 가지셨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의 자손인지를 명확하게 쓴 이유는 - 침례 요한은 제사장의 후손이며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것만을 이야기한 것에 비해 -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에 적합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혈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중요합니다. 대 선지자 사무엘의 연원을 살핀 이유는 사무엘이 레위 지파이자, 제사장 지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쪽을 살펴보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 중에서 그 지파를 확인할 수 없으나 자신들이 레위 지파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구약시대에는 언약의 백성, 제사장 나라, 히브리 민족, 열두 지파 중 하나에 소속되어 있다라는 것 자체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룻기에 출연하고 있는 룻 같은 경우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라 모압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그녀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있으며 만약 모압 여인으로서만 이스라엘에 살았다면 그는 제대로 그곳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였으되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며느리로서 소개되었기에 그는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 지파의 하나님이시지 - 이스라엘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더욱더 -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신은 아니라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19-21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사 시대 초기에 멸족이 될 정도로 극심하게 인구가 줄었기에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베냐민 지파는 당연히 이스라엘 전체에서 발언권이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그 자신이 겸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베냐민 지파의 약소함을 염두해 둔 것일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측이기는 하지만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미디안을 무찔렀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300명으로 군사를 한정시킨 것처럼 왕이 자신의 지파의 힘으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장 약한 지파의 인물 중 하나인 사울을 왕으로 뽑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왕을 소개하는 항목에서 주로 나오는 - 선지자나 제사장을 소개하는 항목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 외모를 묘사하는 항목이 나오는 것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이기에 굳이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으며 아론 지파의 일원인 제사장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왕은 사람들이 따를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기에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묘사를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후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러 가는 상황 속에서 이새의 첫 아들 엘리압의 그 외모를 보고 그가 왕이 될 자질이 있다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대장부처럼 잘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보지 말라고 사무엘에게 핀잔을 주셨지만 다윗도 얼굴이 붉고 잘생겼음을 표현하는 것을 볼 때에 왕조를 열었던 왕들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어디 지파 소속인지, 어느 가족의 소속인지를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의 인간적인 매력이 어떠한지를 알리는 것도 주요 목적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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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성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대세의 기준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결국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 대권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것을 골라 선택하고 상대편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러한 자신들의 정통성의 기준을 납득시키게 하면 그만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왕조의 시대에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차피 정권을 차지해서 자신들이 적어준 정통성의 기준대로 대중에게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서기관들에게 말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상당히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현 왕인 다윗왕의 치세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 대략 40년 정도 - 다윗왕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자신으로서는 적어도 다윗왕의 신하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며 또한 국가종교를 가지고 있는 왕국의 상황상 대제사장의 도움 또한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도니야 입장에서는 군사령관 요압과 대제사장 중 하나인 아비아달을 우군으로 삼는 것에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둘은 아도니야에게 넘어가줍니다. 아비아달 입장에서는 사독이라는 경쟁자를 제칠 수 있다라는 희망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요압은 다윗 왕과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자신만의 이유로 아도니야를 지지하게 됩니다.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갈등은 정통성 싸움이라고 하지만 권력 싸움일 뿐입니다. 누가 왕이 된다 하더라도 백성 입장에서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나단이 가장 먼저 나서게 된 것은 나단이 하나님의 선지자이기도 하지만 솔로몬을 지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친 바벨론주의자, 반 이집트 주의자라고 평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취향, 자신의 정치적인 진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독과 나단이 솔로몬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지지 세력들을 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라고 하는 것은 과정과 결과 모두 하나님의 뜻을 순수하게 따른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사람은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사람은 이 세상,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가족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있으며 같이하는 세력들이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선택에 진영 싸움의 논리, 전략, 계획이 모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비아달과 사독이 다윗 왕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듣지 않았다면 결국은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옹립하겠다라고 하는 것에 사독은 따른 것뿐이고 아비아달은 따르지 않은 것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더 아비아달은 아도니야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다라는 것은 아비아달이 실각한다라는 것 혹은 적어도 이전과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아비아달과 요압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아도니야를 선택했고 나단은 - 하나님의 뜻이기도 했지만 -다윗 왕에게 나아가 아도니야가 자신들의 세력을 모으고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나단이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다윗 왕이 솔로몬 외에 다른 왕을 세운 것을 혹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라고 말입니다. 즉 나단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될 것이니 다윗 왕이 들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윗 왕의 결정으로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이며 다른 왕자를 왕으로 옹립하는 것도 결국은 다윗 왕의 뜻으로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단, 사독, 브나야가 솔로몬의 진영이라고 한다면 아비아달과 요압은 아도니야의 진영이며 다른 모든 왕자들 또한 아도니야에게 붙었습니다. 다윗 왕의다음 왕위를 정하는 싸움에 진영이 갈라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윗 왕의 결정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비록 몸이 많이 노쇠했다 하더라도 다윗 왕만을 따르는 다윗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대다수였기에 다윗 왕이 결정하면 심지어 아비아달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요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할 수 없다라는 것을 나단은 알고 있었기에 다윗 왕에게 먼저 나아가 아도니야가 세력을 모으고 있다라고 이제 다음 왕위에 오를 사람을 결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밧세바가 왕과 말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이르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왕상 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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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나이가 들었다는 소식을 열왕기상은 가장 먼저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새로운 후궁을 들이는데 있어서 신하들의 주청이 먼저였으며 그 이유가 다윗의 건강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수넴 여자 아비삭을 신하들은 들여보내는데 단지 하나 다윗이 아직 사리를 분간할 줄 안다라는 것을 열왕기상 기자 - 요시야 왕 때의 서기관들로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 는 수넴여자 아비삭과 동침을 하지 않았다라는 것으로 언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다윗왕은 늙었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것을 열왕기상 기자는 첫 서두로 언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에 대한 시대의 요구는 상당히 거세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당연히 정통성을 먼저 따지게 되었고 다윗 왕이 그러한 정통성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울 왕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활발한 정복 전쟁을 벌인 점, 사울처럼 사무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 왕의 딸인 미갈을 아내로 둔 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정통성을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여러 견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다니엘이라 갈멜 여인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소생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 여섯은 헤브론에서 낳았더라 다윗이 거기서 칠 년 육 개월 다스렸고 또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다스렸으며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또 입할과 엘리사마와 엘리벨렛과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 아홉 사람은 다 다윗의 아들이요 그들의 누이는 다말이며 이 외에 또 소실의 아들이 있었더라(대상 3:1-9)
    
역대상에 소개된 다윗의 아들들의 이름을 일단은 전부 올려보았습니다. 나이 순으로 차례를 만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저 나이 순으로 아들들이 있다고 보았을 때 아히노암의 아들 암논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 압살롬은 이미 죽었기에 해당 사항이 없는데 둘째 아들이자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아들인 다니엘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그렇게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왕위 쟁탈전에서도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적어도 다윗 왕의 후대 결정전에 참여하지 못할 상황 - 죽었거나 병들었거나 혹은 예루살렘에서 아예 떠나 있거나 -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윗 왕가에서 다윗이 수넴 여자 아비삭을 거두었던 바로 그 때 다윗 왕의 다음을 이을 사람은 아도니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은 암논, 다니엘, 압살롬, 아도니야, 스바댜, 이드르암이며 예루살렘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은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 즉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의 소생인데 여기서 신경써서 봐야 하는 것은 바로 솔로몬의 위치가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서도 네 번째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에서 스토리로 언급된 것만을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서는 죽은 아이 다음의 장자라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역대상에서 언급된 내용을 살펴본다면 솔로몬은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서도 네 번째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있어서 그 정도의 생략은 - 사무엘하에서의 세 명의 아들들이 태어난 다음에 솔로몬이 태어났다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 -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왕위 쟁탈전에서는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갑자기 생뚱맞지만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있었던 왕자의 난에서 태종 이방원은 배다른 동생을 세자의 자리에서 내치고 동생들 전부를 살해합니다. 그들이 왕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정통성 문제로 걸고 넘어들어가버립니다. 즉 왕인 태조 이성계가 아무리 결정했다 하더라도 정통성에서 문제가 있는 서자 출신의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 왕이 될 수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내인 정순왕후는 엄연히 태조의 정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버리면 난을 일으킨 이유가 옹색해지기 때문에 - 정도전의 잘못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 정순왕후를 첩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도니야를 밀고 있던 사람들은 다윗이 아무리 솔로몬을 왕으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밧세바는 우리아의 아내였으며 밧세바와 다윗을 통해 낳은 아들들은 범죄로 인해서 낳아진 자식들입니다. 그러한 그들 중 하나인 솔로몬이 왕이 된다라는 사실은 분명히 이스라엘 전체에 흠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 그리고 다윗 왕가에 흠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그들은 제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임을 백주 대낮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늙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시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고 솔로몬 - 정확히는 다윗 왕의 결정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 왕위의 부정함을 알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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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아히마아스가 말을 얼버무릴 때부터 예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도착해오는 또다른 전령이 있었기 때문에 아히마아스를 다그치기보다는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나아온 구스인 군인은 다윗에게 압살롬의 죽음을 알립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에 압도됩니다. 압살롬의 죽음이 자신 때문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인 것과 다말을 범한 암논을 징계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다윗은 전쟁의 승리보다는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서 슬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자신을 위해 싸워준 자신의 휘하 장수들 그리고 군사들에게 충분히 많이 잘못한 것입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다윗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다윗의 군사들 편에서 다윗의 이 슬픔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압살롬을 죽인 요압은 적어도 다윗보다는 더 냉철하고 상황 파악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압의 위세는 왕에게 나아가 왕을 꾸중할 정도의 힘이었습니다.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는 것이 싫었겠지만 그러나 요압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기에 요압의 말을 듣고 자신을 따라준 휘하 장수들, 그리고 군사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백성들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요압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요압 대신에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 즉 압살롬의 군대장관을 자신의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행동의 이유는 결국 요압을 싫어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압이 자신의 명령체계 아래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압 대신에 - 왕의 말을 어긴 죄 즉 명령 불복종의 죄값으로 -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 즉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사촌인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을 실각시키고 요압의 자리를 아마사에게 줌으로 해서 자신이 군대 전권을 잡으려고 했으나 아마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의 군대의 대적의 장수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압도적인 군세를 가지고도 승리하지 못했던 실력이 부족한 군대장관이었기에 다윗의 휘하 장수들과 군사들은 아마사의 명령에 잘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마사는 스루야의 아들들 즉 요압과 아비새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그들을 기다렸으나 오히려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하였고 그러한 요압을 아브넬을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비새는 군말 없이 따랐습니다. 다윗왕의 명령에 무조건 충성하는 아비새이지만 - 목숨까지도 걸 정도로 - 형에게 복종하기도 하는 장수였기에 요압이 군대를 다시 장악하는데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마사의 시체는 버려지게 되었고 요압과 아비새는 다윗 휘하의 장수들을 데리고 아벨 성으로 가서 세바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게 됩니다.

 


아마사의 패착은 세바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 물론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만 - 군사를 모으고 반란군을 조직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자신이 전권을 쥐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세바를 잡으러 바로 출동하였고 세바는 결국 아벨 성에서 그 성 사람들에게 잡혀 요압에게 죽고 나서 넘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요압은 반란을 진압한 이후에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서 다윗 왕을 만나게 되었고 다윗 왕은 요압을 군대장관으로 삼습니다.

다윗과 요압의 갈등 그리고 권력 투쟁에서 다윗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윗의 행보가 그 휘하 장수들마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자신의 휘하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는 압살롬이 죽었다고 하여 슬픔을 보이고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은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백성들을 욕보이는 짓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또한 요압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적국의 수장 즉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삼았던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행보였습니다.

 


그에 반해 요압은 비록 다윗의 명령을 불복종하고 압살롬을 죽였지만 그가 압살롬을 죽임으로 해서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으며 다윗을 질책함 또한 백성들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다윗을 제지한 것이기에 이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사를 죽인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이해받을 수 있었는데 아마사가 다윗의 군사들에게 신망을 받지 못하였고 요압은 이미 다윗의 휘하 군사들에게 인정받은지 수십 년이기 때문에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하였을 때에 요압에 반기를 드는 장수 그리고 군사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압이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위협할만한 군대장관이 다윗 휘하에 없었다라는 점입니다. 가드 사람 잇대가 있었으나 그는 가드 사람만 제어할 수 있는 장수였으며 또다른 장수인 아비새는 자신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한 요압에게 다윗은 새로운 경쟁자는 계속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삼하 20: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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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신이 이기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백전 노장의 감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휘하에는 가드 사람 잇대, 스루야의 두 아들 즉 요압과 아비새가 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휘하에는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가 있습니다. 군사의 수만 비교한다면 압살롬의 휘하가 훨씬 더 많을 수 있었겠지만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에 들어가서 자신의 군대를 모았던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확신하는 다윗에게 진다라는 개념 자체도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자신들과 함께 출전하겠다라고 말하는 다윗 왕에게 출전하지 말라고 합니다. 다윗 왕의 죽음을 상대가 훨씬 더 원하기에 우리의 희망을 사그라트리지 말라고 합니다. 승전을 생각했던 다윗 그리고 그를 어설프지만 많이 닮은 압살롬은 출전을 원했고 이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상태에서 다윗에게 있었던 사람들의 염려는 압살롬에게는 압살롬의 휘하에서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번 싸움이, 이번 반란이 자신으로부터 기인하였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취했던 바로 그 때, 그리고 암논이 다말을 범했던 바로 그 때, 두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은 그 두 번의 기회 모두 저버렸습니다. 결국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던 바로 그 때 회개하기보다는 우리아를 죽여버렸고 암논이 다말을 범했을 때 암논을 벌하지 않고 방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다윗은 이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가드 사람 잇대, 스루야의 두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에게 부탁을 합니다. 나를 봐서라도 왕자 압살롬을 사로잡으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단 한 명 요압은 다윗의 명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휘하에 있었지만 다윗의 명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권력에 가치가 없는 존재인 압살롬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습니다. 자신의 대적이었으며 왕 다윗의 대적이기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빨리 죽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로 사람 아히도벨이 다윗만 죽이고 돌아오겠다라고 압살롬에게 말한 것도 요압이 압살롬을 죽이고 나팔을 부른 것도 바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승리를 신속히 쟁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의 고민은 사실 전쟁이 시작되고, 아니 반란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삼하 18:19-23)
 


그러한 다윗의 심정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요압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요압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서라도 압살롬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살롬이 살아돌아오게 되면 그의 세력과 다윗은 도모할 것입니다. 다윗은 스스로에게 죄를 돌리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죄로 압살롬이 이렇게 죄를 범한 것이니 압살롬과 압살롬의 세력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할 것이며 그러한 기회는 항상 요압의 실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그 소식을 바로 다윗이 있는 성으로 알리기 위해서 사람을 찾습니다. 그 자리에 아히마아스가 있었지만 그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가 전령으로서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제사장 가문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사독의 아들이며 장차 제사장이 되는 - 대제사장이 될 수도 있는 -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신에게 친근한 아이에 불과하지만 다윗이 받을 충격, 다윗이 가지게 될 슬픔 혹은 분노를 알기에 그 분노를 이 아이 아히마아스에게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아직 젊은 청년에 불과합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떠한지,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에게 어떠한 타격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알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히마아스는 이 승리의 기쁨을, 전승의 기쁨을 왕에게 알리고 싶다라는 생각에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를 내치고 구스인 청년을 보냅니다. 과거 다윗은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린 아말렉인 청년을 죽인 전력이 있습니다. 즉 요압은 다윗이 구스인을 처단함으로써 그 마음을 달랬으면 좋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명분이 없기에 다윗이 구스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압살롬이 죽음을 아히마아스가 전령이 되었을 때 다윗이 받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윗이 아히마아스를 볼 때마다 압살롬이 생각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즉 구스 사람을 다윗이 처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그것은 기대일 뿐이니 - 구스 사람이 압살롬의 죽음과 관련된 오명을 같이 짊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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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과 다윗의 전쟁은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이 아닙니다. 유다 지파 내에서 일어난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반란 사건입니다. 유다 지파 내에서 일어났기에 압살롬 도당의 지휘관들은 모두 다윗 일가나 혹은 다윗의 신하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참모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은 원래 다윗의 참모였으며 - 그러나 내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 압살롬의 지휘관인 아마사는 아비갈의 아들인데 아비갈은 요압, 아비새 그리고 아사헬의 어머니인 스루야의 동생입니다.
   
유다 지파 내에서 이뤄진 내전이기에 더 치열할 수밖에 없고 더 혹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금송아지 사건에 대노하였을 때에 모세가 레위지파에게 자신의 친족, 친구, 가족을 죽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를 지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들, 친족, 신하들에게 침을 받으라고 처벌을 내리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가족, 친구, 친족, 친척이라는 사이 자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달콤하고 매혹적입니다.
    


그 매혹적인 달콤함에 빠져버린 압살롬과 아히도벨 그리고 아마사와 같은 신진 세력들은 다윗과 다윗의 세력들을 모두 몰살시키려고 하였으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과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의 달음질로 인해서 아히도벨의 모략은 무너져버렸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신진 세력들의 패배를 예측하였기에 집에 돌아가 주변을 정리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리고 압살롬과 다윗은 요단강 건너 길르앗 땅에서 대회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 대회전은 절대로 압살롬이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신진 세력들에게 용맹하고 강맹한 군장들이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나중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비갈의 아들 아마사가 군대장관을 맡았는데 그 최고 사령관마저도 다윗의 일개 장수보다도 못한 지휘력을 나중에 검증 받았을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길로 사람 아히도벨은 대회전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피곤한 다윗 무리들을 급습하여 다윗 왕만 죽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을 제외하고는 압살롬도 그리고 압살롬 일파의 사람들도 모두 자신들과 다윗의 군 장악력의 차이가 어떠한지를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가드 사람 잇대, 스루야의 두 아들들인 요압과 아비새는 다윗의 병사들을 이끌고 압살롬과 싸우려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윗은 압살롬을 살려서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다윗이 그러한 부탁을 하게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압살롬이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압살롬의 범죄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서 -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것 - 파생되어진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나는 유다 지파의 내전이 지휘관의 죽음으로 끝장나버리면 그 골을 메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에게 죽을 때에도, 그리고 요압에게 아브넬이 죽을 때에도 이스보셋이 반란을 당해 죽을 때에도 그들을 적이라고 해서 그들의 죽음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슬퍼하였던 것은 그들이 세력들의 대표이기에 그들의 세력까지 끌어안기 위해서는 이러한 행동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방인들과의 싸움에서는 즉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들과의 싸움에서는 상대를 말살시키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이스라엘 내전을 수행할 때에는 그들과 화합하기 위해서 애를 썼었습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과의 싸움에서도, 압살롬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세력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압살롬도 요압도 그리고 나중에 솔로몬도 그러한 다윗의 성향과는 많이 달랐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달랐습니다. 요압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력 유지였습니다. 다윗이 있지 않으면 자신의 권력이 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윗을 해하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 자신의 권력에 해가 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살해하였습니다. 요압의 실력은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대한 군부의 지지 또한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요압을 다윗은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죽인다면 요압이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잇대와 아비새에게 압살롬이 잡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붙잡히게 되었고 처참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는데, 왕자를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반란의 수괴였으며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이 죽자 요압은 나팔을 불어 전쟁을 그치게 하고 다윗이 기다리고 있는 성으로 전령을 보내려고 합니다.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삼하 18: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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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압의 관계는 사실 그리 좋지는 못합니다. 다윗이 왕이 아니었을 때, 요압이 군대장관이 아니었을 때 요압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다윗이 전면에 나섰을 때 성경 속에서 가장 많이 나타났던 다윗 휘하의 장수는 바로 요압의 동생 아비새였습니다. 아비새는 신약성경의 베드로와 같은 성격을 가진 장수였는데 그는 말 그대로 다윗의 명령이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갈 작자였습니다. 다윗이 적진 한 복판에 있는 사울 왕에게 가자고 하였을 때 아비새는 꺼리는 말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듯이 따라갔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아비새는 또한 순진할 정도로 다윗만을 따랐는데 그것이 가끔은 다윗에게 핀잔을 듣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굴 속에서 사울 왕을 만났을 때, 적진 한 복판에서 다윗과 잠자는 사울 왕을 대면하였을 때 아비새는 사울 왕을 죽이자고 다윗에게 말합니다. 아비새가 사울 왕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다윗이 권력을 잡고 자신도 입신양명해보자는 그러한 뜻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다윗의 적이니 당연히 죽어야 하지 않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순진할정도로 다윗만을 따랐던 그였습니다.
  


그러한 아비새였기에 다윗과 요압이 사이가 좋지 않아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도매급으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다윗을 누가 욕이라도 하려면 - 시므이 같은 경우 - 당연히 자신이 먼저 화를 내고 자신이 먼저 해결하려고 합니다. 아비새가 오로지 다윗만 쳐다보고 다윗만 따르는 장수였다면 요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압은 정치 군인입니다. 전장에서 지혜롭게 군대를 이끄는 군인이기도 하며 장수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다윗이 왕 위에 오른 다음 그가 군대 장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군대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정치 군인에 대해서 다윗이 그리 좋은 시선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요압을 끌어내리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윗과 요압이 틀어지게 된 이유는 바로 사울 왕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넬은 요압과 아비새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던 자였기에 스루야의 아들들 입장에서는 같은 하늘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나 다윗은 너무나도 쉽게 아브넬과 - 하나의 국가를 만들려는 욕심에 - 동맹을 맺었고 요압은 두 가지 이유 - 아사헬의 원수를 갚는 일,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 - 로 아브넬을 죽이게 되었고 그 때부터 다윗은 요압을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을 여부스 족속에게 탈취하려고 하였을 때에도 이미 군대장관이었던 - 물론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으로 인해서 공석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 요압을 내치고 새롭게 실력자를 얻어서 군대장관을 세우려고 하였지만 예루살렘을 탈취한 것은 결국 정치군인이면서도 군대의 신임을 받는 요압이었고 다윗은 자신의 대에서는 - 나중에 압살롬의 군대장관 아마샤의 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 요압을 죽일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군대장관이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요압을 두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요압은 왕과 사이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을 많이 하게 됩니다. 요압의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다윗 시대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대부분 요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여달라는 다윗의 요청을 수행하였던 것을 보면 다윗이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요압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비새와는 다른 것이 아비새는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 자신에게 다윗이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서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다윗만을 쳐다보는 충견의 느낌이라 한다면 요압은 다윗과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충분히 정치적인 영역을 가진 군대장관이라는 점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그술 왕에게로 도망갔을 때 다윗이 압살롬을 다시 부르고 싶어한다라는 것을 캐치할 수 있을 정도로 요압은 다윗의 심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2년 동안 다윗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요압에게 따질 때에 요압이 그러한 압살롬을 만나려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요압이 압살롬울 데리고 온 이유입니다. 요압이 압살롬을 불렀던 이유는 압살롬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하나 요압은 압살롬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어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왕자라고 하나 요압은 당시 군대 최고 권력자이기에 그에게 아양을 떨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아비새와 다르게 다윗에게 무조건 충성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군대장관 지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과도 대립하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압은 압살롬을 왕자라고 해서 대우하지도 않으며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요압의 성격 때문에 압살롬의 비극은 결국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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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욥이 말문을 열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었다(욥 3:1, 2).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모든 것을 가졌다가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사람, 재산도, 아이들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도 이제는 잃어버리고 건강마저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그는 마지막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재앙만이 그를 가득히 둘러싼 바로 그 때 그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기에는 그의 마음에 신실함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 슬픔은 그를 잠식하였고 그는 그곳에서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하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자신의 삶을 저주하였던 이유는 그의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그의 마음이 급격하게 무너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친구들의 위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잘못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는 친구들이 자신의 생각을 인정해주기를, 자신을 두둔해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은 욥 그가 하나님께 잘못해서 저주를 받았고 결국 그렇게 저주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그는 친구들의 두둔이 필요했습니다.
    
친구들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욥이 잘못했기에 저주를 받은 것이고 잘못했기에 저주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욥을 위하는 마음으로 -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 욥에게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라고 고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고언은 오히려 욥의 마음을 격발시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저주할 수 없었던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었던 하나님께 비난의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친구들을 비난하고, 친구들을 저주하고 친구들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욥이 대답하였다. 네가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며, 어느 때까지 말로써 나를 산산조각 내려느냐? 너희가 나를 모욕한 것이 이미 수십 번이거늘, 그렇게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으냐? 참으로 내게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문제일 뿐이고, 너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너희 생각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낫겠고, 내가 겪는 이 모든 고난도 내가 지은 죄를 증명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욥 19:1-6).
    
욥은 친구들에게 원했던 위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친구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오셔서 자신의 의를 인정해주십시오. 증명해주십시오. 친구들이 말하는 것처럼 제가 잘못해서 이렇게 재앙을 입은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십시오. 그는 하나님께 위로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말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원망의 목소리도 있고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는 결국 원했던 것은 하나님이 없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대화하는 것 단 하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아뢰겠다.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욥 10:1).
       
그리고 그 다음 하나님이 현신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요구에 응답하시지도 않고 다른 네 명의 욥의 친구들의 말에 응답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광막하심,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막측함을 주장하십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의지를, 하나님의 창조물을 창조하신 그분의 의지를 욥은 이해할 수 있느냐고, 이해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근거를 대보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욥에게 묻습니다.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 42:1-6).
    
욥은 자신의 부족함, 연약함을 인지합니다. 그러면서도 욥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자신에게 답해달라고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달라고, 단번에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욥은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자신의 능력, 의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욥은 그것을 당연히 알 수 없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주신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음성이 단지 듣고 싶었던 것이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왜 이렇게 많은 절망, 고통, 재앙을 주셨는지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나중에 있을 갑절의 복보다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응답하셨다라는 것 하나가 더 큰 복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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